그 해, 우리는 ⑪
1.
이 몇 개가 빠져 잇몸으로 힘겹게 혼자 점심을 드실 어머니를 생각하여 구의동집에 들렀더니 여동생이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일 병원에 가는 거라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아니라 여동생이 치료를 받는 것이었단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고 하는 걸 보니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었나 보다. 지난 주말에 들었던 어머니의 얘기가 떠올랐다. 여동생이 방금 전 지가 한 말도 잊어버리는 등 통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했었는데 그 증상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그리 심했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형이 죽었을 때 며칠 동안 제 방 구속에 숨어 울던 아이였다. 싸한 바람 한 자락이 내 야윈 가슴 한 구석을 스쳐갔다. 저러다 동생이 제정신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겁도 났다. 여동생이 끓여주는 라면을 같이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자꾸 가슴이 먹먹해져 주먹으로 툭툭 쳤다. 애꿎은 담배만 연달아 타들어갔다. 차라리 독한 소주라도 한잔 걸쳤으면 좋았을걸..
2.
도대체 내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장모의 생신이어서 처갓집에 다니러 갔다가 들른 본가에서 어머니가 또 한참을 하소연을 하셨다. 며칠 전.. 여동생이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서 울면서 시골에 가야겠다고 난리를 피웠단다. 치매환자처럼 요즘 정신이 들락날락하여 늘 다니던 길도 낯설다 하고 느닷없이 내 걱정, 남동생 걱정을 하기도 하더니 뜬금없이 형이 외국에서 아직 잘 살고 있냐고 묻기도 했었단다. 친척들에게도 낯을 가려서 명절 때조차도 시골 한번 내려가보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날은 대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머니의 얘기로는 꿈을 꾸었단다. 자꾸 꿈내용을 물으니 말을 안 하다가 갑자기 두 손을 빌며 사정사정했단다. 꼭 형이 묻힌 곳에 다녀와야겠다고... 휴....................................
며칠 동안 내 곁에 동생을 두고 보살펴주어야겠다고 말했다. 좀 쉬게 해주고 싶었다. 아내를 통해 자초지종을 좀 들어보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걱정을 혼자 다 껴안고 사는 듯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도 그 식당이 잘되어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하고 그런단다. 사실은 어머니도 혼자 계실 때 형을 생각하며 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형의 체취가 묻어있는 그 집을 팔고 이사 가시라고 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형의 일은 특히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감당하기 힘든 형벌과도 같은 일이 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여동생을 잘 구슬려 우리 집에서 며칠 지냈다가 금요일쯤 보은엘 다녀와야겠다.
3.
퇴근길에 여동생을 데리고 집에 왔다.
맛있는 저녁을 사 먹이고 애써 웃으면서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아내도 평소보다 더 말을 많이 했다.
여동생은 머리가 무거웠는지 자꾸 아래로 고개를 떨궜다.
말투에 기운이 빠져있었고
배불리 먹였는데도 허기진 아이처럼 눈빛이 흐렸다.
걸신들린 아이처럼 먹는 것만 보면 다가앉던 아이가,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사람처럼 어머니를 닮아 쩌렁쩌렁 큰소리를 냈던 아이가
넋나간채 내 앞에 앉아있었다.
여동생을 데려올 때 배웅 나왔던 부모님들을 어둠 속에 남겨놓고 떠나왔을 때처럼
또다시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여동생을 태우고 지나온 강변북로에서 보았던
푸른 달만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