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⑨
일요일 저녁, 화장실에서 쓰러질 뻔했다. 너무 고통스러웠고 눈까지 침침해져 왔다. 임신한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 운전해서 구리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아니, 나 없으면 대신해 줄 사람도 없는 업무가 있는데... 어이없게도 난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일 생각뿐이었다. 결국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밤에 학교로 향했다. 시야가 점점 흐려져서 차량의 불빛들이 뿌옇게 보여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고 의사도 극구 말렸지만 내가 고집을 부렸다. 사무실에 들어와 편입생 업무처리를 위한 사전작업을 해놓고 팀장님에게 전화해서 뒤처리를 부탁한 후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수술대에 누웠다.
합병증에 따른 상세불명의 치질. 우습지만 이것이 지금 내게 붙여진 병명이었다. 회사에 추가로 병가를 낼 때 제출할 진단서를 달라 해놓고 퇴원해서 살펴보니 병명이 그렇단다. 제길..'상세불명'이란 말도 그렇지만 '합병증'이란 말이 더 무서웠다. 휴가 첫날부터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간 것이 다음날 수술로 이어졌다. 그 사이 아픈 몸으로 빈 사무실에 나가 수요일부터 계획했던 일들을 미리 해놓고 팀장에게 전화를 걸고 돌아오는데 아픈 것보다 이 상황이 더 당황스럽고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수술을 받을 때는 아픈지도 몰랐다. 척추에 마취주사를 놓고도 모자라 잠시동안 전신마취까지 했던 것 같았다. 의사는 아내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내 부모님들에게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고만 말했다. 하혈기가 있어 오지는 못하고 전화만 걸어온 아내에게 의사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섯 군데의 혹을 제거했다고 말했다 한다.
수술을 받고 병실에서 내내 무통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혈관통이 느껴졌고, 결국 밤새 잠을 설쳤다. 열까지 나서 아내 대신 내 곁을 지킨 어머니가 괜한 고생을 하셔야 했다. 게다가 가족력 병이라면서 내내 당신의 잘못인양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던 아버지는 결국 내 치료비를 당신이 내셨다.
[2007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