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⑧
1.
서른 일곱살 아내가 ...
임신했다...!
인터넷으로 휴일 검진하는 병원을 찾아 확인을 했다.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들어있다고 했다.
어른들은 볼 수 없는 뱃속 아이를 아이들은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며칠 전, 불쑥 딸아이가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나와 아내는 아무런 꿈도 꾸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큰 가물치를 잡는 꿈을 꾸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특히 기뻐하셨다.
형이 주고 간 선물이라고 하셨다.
숙부님들께서도 소식을 듣고 전화해서 축하해 주셨다.
며칠 뒤에 할머니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더니
(할머니께는 형의 부음을 알리지 못했다)
구렁이가 시골집을 넘어가는 꿈을 꾸셨다면서 좋아하셨다.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
아내가 4월에 아들을 낳은 동서에게 묘하게 시샘을 냈던걸 난 잘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나는...
놀라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둘째 욕심이 없었기도 하려니와
지금 딸아이가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더 이상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다.
이제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아이를 키우려니
출산해야 할 아내의 나이가 걱정스럽고
늙어서도 아이를 부양해야 할 내 처지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딸아이 때문에 고생을 했던 터라
뱃속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지, 아무 탈없이 자랄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무덤도 없이 유골로만 누워있을 형이 생각났다.
이래저래, 생각만 많아지는 밤...
2.
딸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뱃속 아기가 남자아일 것 같니 여자아이 같니?"
딸아이 하는 말,
"남동생일 거 같아요. 전 솔직히 쌍둥이어서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뱃속의 아이 성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다더니
진짜 그런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이 아이는 나와 내 가족에게 축복 같았다.
그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힘든 시간들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신의 선물이 맞는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둘째 아이의 출현에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그 당황스러움이 점점 행복감으로 바뀌고 있다.
3.
첫아이 때는 안 그랬는데 둘째가 생긴 후부터 아내가 투덜대는 일이 많아졌다. 냄새가 나서 물도 못 마시겠다는 등, 평소와 다르게 별의별 사소한 것들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거실 주변을 정리하다가도 아휴 힘들어, 하면서 소파에 드러누워서 나만 쳐다봤다. 참 어이없다 하면서도 아내가 하다만 청소일을 마무리 짓고 내친김에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식사도 상차림 대신 아내가 덜 힘들게 식탁으로 옮겨서 차려먹었고, 다 먹은 후에는 딸아이와 함께 반찬들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어주는 등 본격적으로 아내 수발에 나섰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아이를 낳아야 하니, 아내가 걱정도 되고 안쓰럽기도 했기에 불만이 있을 순 없었다. 며칠 전엔 출근길에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주는데 뜬금없이 던킨도너츠가 먹고 싶다고 했다. 사무실에 전화해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 아내에게 던킨도너츠를 사주고 출근했다. 오늘은 오후에 내게 전화해서 진한 곰탕이 먹고 싶다고 칭얼댔다. 퇴근 후 집 근처 전주곰탕집에 데려갔다. 곰탕 한 그릇 앞에서 아내는 무척 행복해했다.
갑자기 어린애 같아진 아내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지긴 했지만 나는 그저 좋았다. 그동안 웃을 수 없었고, 행복해지는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느꼈었는데, 이젠 아니다. 새 생명의 탄생은 우리 가족을 덮친 모든 불행과 재앙 같은 시간들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다.
불현듯, 태국에 갔을 때 얻었던 조그만 돌이 떠올랐다. 형의 일을 처리하느라 고군분투할 때 현지에서 우릴 돕던 태국인 노인 한분이 아내의 인상이 좋다며 선물로 주었던 조그만 염주알. 노인은 그 조그만 돌이 아내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고 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