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스토리

그 해, 우리는 ⑥

by 나춘봉씨


49재를 마친 후 시간은 강물처럼 무심하게 흘러갔다. 남은 우리들의 인생은, 처음과 달리 평온함을 찾아가는 듯했다. 정말 우리는 평온했던 것일까?


어머니는 이제 제법 나를 따라 외출을 나서기도 하셨고,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담담한 표정을 갖추며 형의 유품들을 정리하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며칠 전에 사드린 아버지 핸드폰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내게 무척 서운하다고 하시며 큰소리로 우실 적엔 참 당황스러웠다. 내가 성인이 된 후 한번도 내게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신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상했다.


아버지는 충청도 양반답게 이제야 자식을 잃은 슬픔을 느끼시는 중이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 좋아하던 나들이도 안 하고 집에만 계시려 해서 매일 억지로 아버지를 집밖으로 내쫓았다고 하셨다. 엊그제는 등산 중에 지갑을 잃어버려서 어머니의 매서운 잔소리를 들으시기도 하셨다고...


동생들은 비교적 빠르게 일상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남동생은 박한 급여를 받아가면서도 여전히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 있었다. 4월 초에 태어난 아이가 녀석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여동생은 예전처럼 호들갑스럽게까지는 아니지만 살갑게 내 딸아이를 사랑해 주었다. 다만, 얼굴에 진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 지우다만 화장처럼 생전에 형을 타박했던 자신에 대한 후회의 감정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나와 내 아내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전보다 웃는 횟수는 줄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서로 얘기하며 웃기도 했다. 아내는 평소처럼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내고 있었고, 나는 회사에 지각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팀장의 배려로 업무량은 전보다 많이 줄은 대신, 나의 업무감각은 고도의 활력을 찾으면서 후배 직원들의 신뢰를 얻어가는 중이었다. 다만, 사무실 안에서의 갑갑증은 여전했다. 2007년 4월에는 왜 이리 소풍 가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장례식장에 다녀올 적마다 준비도 없이, 인사도 없이, 고통과 두려움 속에 혼자 먼 길을 떠났을 형 생각이 나서 우울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을 그분들이 부러웠다.


형에 관한 태국경찰의 공식문서가 일주일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매우 늦은 감이 있고 또 결과가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잘 안다. 많은 부분, 포기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변명 같았지만 어떻게 해도 죽은 형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서 형의 흔적들을 드러낼수록 내 부모님들의 생명력은 더 빠르게 소멸해갈 것이었다. 형의 죽음에 관한 결정적 비밀들은, 절대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이어야 했다.


추억의 유통기한은 목숨이다. 내가 죽고, 형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면, 형에 관한 모든 기억들도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었다. 잊혀가는 것이 인생인 거고, 평범한 사람들에 관한 기억은 언제나 목숨과 함께 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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