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지,연우에요

할부지랑 처음 나간 날

by 연우주

할부지와 연우는 아직 서먹하다.

만나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긴 한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몸은 이미 할아버지 품으로 파고드는, 그 묘한 어색함. 어쩌면 연우는 할아버지가 좋은데 표현하는 법을 아직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19개월. 아직은 말보다 몸이 먼저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다.

처음 듣는 사람은 퉁명스럽다 느낄 수도 있는 그 말투로, 그래도 손자한테는 말을 건넨다.


"연우 밥 뭇나~?"

"연우. 할아버지가 귤 줄까?"


귤 몇 개를 까서 건네주고, 연우가 오물오물 입에 넣는 모습을 바라보던 할아버지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진다.


"아이고야, 먹는 것 봐라."

그리고 나를 보며 한마디 덧붙인다.

"연우야, 니 애비는 돈 많이 벌어야겠다."

틀린 말이 없어서 더 웃겼다. ㅋㅋㅋ


오늘은 셋이서 외출하는 날이다. 집 근처 상가 안에 작은 동물원이 생겼다.

이 나이엔 딱 맞을 것 같아서 할아버지 오시는 날에 맞춰 잡았다.

부산에서 울산까지, 편도 한 시간 이십 분. 결코 가볍지 않은 그 거리를, 손자 보러 달려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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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들어서자 연우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연우의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토끼였다. 양이나 염소 앞에선 몸을 뒤로 빼면서도, 토끼 앞에만 서면 아장아장 달려들듯 밥을 건넨다. 연우가 토끼띠라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토끼가 제일 만만해 보여서인지.


그런데 솔직히, 나는 자꾸 다른 동물 우리로 연우를 이끌었다. 입장료를 냈으니 이것저것 다 봐야 한다는 내 기준이, 연우의 작은 발걸음보다 앞서 있었던 것이다. 연우는 그때마다 칭얼거렸고, 나는 그 칭얼거림을 달래가며 굳이 다음 우리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토끼 옆에 쭈그려 앉아 실컷 놀게 해주면 됐다. 이 나이엔 다양한 동물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 앞에서 실컷 웃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요즘의 나는 그래서, 연우가 싫다고 하면 미련 없이 접는다. 조금 늦게 배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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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 음료수를 사줄까 하다가 참았다. 한결이가 신신당부를 했다. 당이 너무 많다고. 틀린 말은 아닌데, 연우가 뽀로로 음료를 손에 쥐면 끝까지 내려놓질 않는 걸 보면 나도 사주고 싶어지긴 한다.

그게 또 아빠 마음이다.


한참을 더 보고 싶었는데, 연우는 한두 바퀴 돌고 나서 보채기 시작했다. 말은 못해도 몸이 먼저 출구 쪽을 향하고 있었다. 엄마가 없어서 그런 건지, 아빠랑 할아버지가 너무 재미없어서 그런 건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할아버지도 무뚝뚝하고, 나도 무뚝뚝하다. 엄마처럼 신나게 말을 받아주는 재주가 없다 보니 연우 표정에 심심함이 역력했다.


할아버지가 벤치를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연우야~ 여기 의자에 앉을까."

연우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짜증 한번 내질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나 나였으면 벌써 한소리 했을 텐데, 연우는 그냥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조용히.


연우도 알고 있는 걸까. 할아버지가 부산에서 울산까지 달려온 이유를.

서먹하지만 품에는 안기고, 지루하지만 짜증은 내지 않는. 19개월짜리 연우는 이미 할아버지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보다 먼저,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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