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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의 한가운데서 한국의 아픈 역사를 보다

8월 25일, AJ 미디어 루키즈 이지수의 기록

Korea Center

 삐까뻔쩍한 샌프란의 건물들 사이 어느 구석, 세 소녀가 손을 잡고 둥글게 서 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의 자세로 꼿꼿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한 할머니.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들의 눈빛에선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를 슬픔과 강인함, 의연함과 굳건함이 느껴졌다. 과연 이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옆에 있는 동판에서 우리는 그들의 아픈 사연을 알 수 있었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에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태평양 13개국 여성과 소녀 수십만 명이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당했다.


 샌프란 도심부 한가운데 있는 세인트메리 센트럴파크에는 위안부 기림비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코리아 센터에서 손성숙 사회정의교육재단 대표님과 에릭 마 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님을 만나 기림비가 건립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에 대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 기림비가 건립되기까지

 어쩌다가 이 낯선 미국 땅에 위안부 기림비가 건립될 수 있었을까? 손성숙 사회정의교육재단 대표님은 위안부 역사의 왜곡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이 일을 시작하셨다. 캘리포니아주는 교사들의 자율성이 매우 높아 가르칠 수 있는 학습 주제와 교재의 선택폭이 다양하다. 그 때문에 교사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 내용이 좌지우지되기 일쑤다. 이런 배경 하에 미국의 역사 교육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고 알리기 위해 기림비 건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기림비가 설립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7월, 중국계 미국인 에릭 마가 작성한 결의안이 시의회에 상정된다. 그러나 공청회 개최가 결정되고 일본 우파의 본격적인 반대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일본 정부에 대한 애국심을 빌미로 여러 가지 프레임을 중첩시킨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거대 언론들이 큰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는 국민 모두가 기림비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낸 것이다. 또한 기림비 건립이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역차별이며, 전쟁 중 성노예는 보편적으로 존재해온 문제라는 등의 프레임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려 한다. 이것이 인종, 민족, 젠더, 계급의 초월적 소통에 장애물이 된다. 이에 더해 오사카 시장은 결의안을 채택할 시 샌프란시스코시와의 60년에 걸친 자매결연을 해소하겠다는 서한을 보낸다. 정치적 압력이 상당해지는 가운데, 결의안 통과가 불투명해지는 듯했나. 하지만 기림비 건립을 추진했던 측 역시 이에 맞서고자 노력한다. 이용수 할머니를 전체 공청회에 초청하여 그 당시 일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도록 모금 운동을 벌이고 실제로 이용수 할머니는 공청회에서 발언하게 된다. 그리고 2015년 9월 22일.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다.

 하지만 기림비 건립에 대한 기쁨도 잠시, 그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2017년 2월 1일 오사카 시장이 샌프란시스코 시장에게 한 편지를 보내온다. 2015년 12월 28일에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언급하며 위안부 문제는 돌이킬 수 없고 이미 해결되었으니 기림비 건립이 그 합의에 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림비를 건립하기까지 쏟아진 땀과 수없는 노력들은 꺾을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위안부 기림비 설립을 추진한 지역 활동가들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희생자들을 기리고 역사의 어두운 순간을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더 이상 자매 도시 관계 유지는 어려울 것 같다는 답신을 보낸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와 오사카 사이의 60년이 넘은 자매결연은 해지된다.



 그리고 2017년 9월 22일, 세인트메리 파크에 기림비가 건립된다. 한국과 중국, 필리핀은 물론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본 13개 민족 공동체가 건립에 동참했다. 일본 정부와 우익단체들이 집요한 방해 속에서도 마침내 기림비를 세워낸 것이다. 기림비는 한국, 중국, 필리핀 출신의 세 소녀가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서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이는 자매애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시하 성폭력의 문제가 인류 보편의 문제임을 표상한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분은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던 김학순 할머니다. 이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기림비를 ‘여성 강인함의 기둥’으로 명명했다.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결의는 어쩌면 작가의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께서는 공통적으로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신다고 한다. 그 말씀을 실천해내기 위해 이 먼 미국 땅에서 위안부 기림비가 건립되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상흔을 제대로 마주해낼 때, 우리 역사는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타임라인]

2015년 7월 00일 위안부 기림비 의안 상정

2015년 9월 22일 ‘위안부 결의안’ 통과

2017년 2월 1일 오사카 시장 편지 발송

2017년 2월 3일 샌프란시스코 시장 답신 발송

2017년 9월 22일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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