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초맘에서 싱글맘으로

나를 존중해 주세요.

by Hannah

결혼식 때의 나는 정말 이쁘다. 원래 이쁘지만,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박혀있어서 살짝 그레이빛이 도는 머메이드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는 더 이쁘더라. 하하


알만한 기업이나 모 지역 부동산 부자 자재들을 뿌리치고, 서초동 남자와 나는 짧은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그 남자를 왜 택했냐는 시답잖은 이유를 애써 찾아보자면, 그냥 17살부터 부모 곁을 떠나 외국과 타 지역에서 떠돌다 보니 이제 그만 정착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코사무이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서초동, 그러니까 사랑의 교회 뒤편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뭐, 잠원동, 반포동 등과 더불어 집값이 어마어마한 지역이니 다들 취집이냐 뒷말도 있었다. 험담의 베이스에는 분명 질투가 깔려 있음을 알기에 사실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때도 지금도 남 말을 잘 안 듣는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삼 개월 뒤 큰 아이를 임신하고, 강남 차병원의 교수에게 특진을 받았다. 아이를 낳고 지금은 사라진 자모 수영을 다니고, 주말이면 서리풀 공원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비눗방울 불며 지극히 평범한 서초맘으로 살았다.


서초대로에서 딱 한 블록 안으로 들어오면, 또 다른 세상인 것처럼 조용하고 깨끗하다. 건너편은 식당과 술집이 즐비한데, 내가 살던 아파트 주변은 주거 목적이 메인이고 커피숍, 미용실, 우체국과 같은 상가만 간혹 있었다. 지금은 사랑의 교회가 들어서면서 주차난과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다, 커피숍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뭐 한잔 마시기 힘들지만...


그 당시 이 동네에서 아이를 게다가 신생아를 보는 것은 남극에서 북극곰 만날 확률과 같을 거다. 아이를 데리고 어느 식당을 가던 온갖 이쁨과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그 증표로 늘 서비스와 함께 환대를 받았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키즈프렌들리 지역이다. 보리빵집을 들리면, 꼭 두 세 봉지를 아이 손에 들려주고, 커피숍에 가면 요청도 안 한 따듯한 우유를 내어주고, 단골집 냉면집의 만두 공세는 뭐~ 하하. 그만큼 아이가 귀한 지역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집에 있는 것보다 밖으로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것을 즐겼다. 모두가 내가 낳은 아이를 무척 사랑해 주기에, 나까지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50대 여성분들 특유의 친근함과 오지랖이 그때의 나를 살린 것 같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면, 매일 나를 기다리는 늪이 있었다. 그놈의 집구석. 정말이지 그놈의 집구석이다.


미친 시어머니의 횡포와 마마보이 남편의 이야기는 폭싹 속았수다의 영범과 영범모 못지않게 치가 떨린다. 다들 영범이 불쌍하다고 하지만, 아니 뭐가? 대체 어디가 불쌍한가? 본인 엄마가 그런 막말을 내뿜을 때, 왜 애순이를 지켜주지 않고 억울해하며 어머니! 어머니!라고 소리만 지르냔 말이다. 아이고, 등신 중의 상 등신 따로 없다. 진짜 개가 낫다, 개가 나.


나는 험담을 딱 한 명에게만 한다. 친언니. 그 외엔 험담을 안 한다. 왜? 결국 돌고 돌아 곤란하게 만드는 게 험담이니까. 그렇지만, 여긴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라 생각하고, 또한 그들이 이 글을 읽을 확률은 북극에서 남극 펭귄을 만날 정도이기에, 그 망할 집구석의 시어머니와 그녀의 아들 이야기를 살짝 풀어보고자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