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공주님

by YOSPAPA

"우리 큰 공주 왔나."


처가에 도착하자, 아버님께서 우리를 반겨주시며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

다른 때는 흔히 말하는 무뚝뚝한 경상도 상남자 스타일이신 것 같다가도,

자식들 앞에서는 아버님도 나와 다를 바 없는 딸바보이시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신 것 같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아버님께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의 에피소드.


"다시 볼지 모르겠지마는. 잘 지내래이."


헤어질 때 차비 하라고 봉투 하나를 건네주시며 아버님께서 내게 말씀셨다.

아내는 음에 들어서 하신 최고의 애정표현이라고 거듭 통역했지만,

당시의 난 다르게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다시 보지 말자. 잘 지내라. 이 돈 받고 우리 딸에게서 떨어지고.'




처가에 와서 삶은 계란을 먹는데, 아내 것은 아버님께서 직접 껍질을 까서 건네주신다.

이제는 불혹에 더 가까운 아내도, 아버님 앞에서는 여전히 다섯 살 딸인가 보다.


이렇게 자상하신 아버님도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신적이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이십 년 전, 아내 고등학생 시절.

아내는 친구들과 당시 유명 남자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보러 갔다.

광란의 저녁을 보내고 늦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그녀는 깜빡 잠이 들어 귀가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부모님의 전화와 문자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버스에서 내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한참을 수다를 떨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에게 쏟아진 아버님의 극대노.

정작 본인께서 이성을 잃으신 채로 계속

'니 제정신이가?'

분노의 사자후를 내뿜으셨다고 한다.


아내가 나에게 묻는다. 같은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했을지. 아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지.

나는 신데렐라의 요정님이 아니다.

요정님은 이 험한 세상에 12시까지만 알아서 들어오라고 어찌 무책임하게 말한단 말인가.

아빠라면 직접 호박 마차를 끌고 딸을 마중 나갈 것이다.

[Image by Flavio Botana from Pixabay]


나는 아버님의 분노에 천 번 만 번 공감한다.




처가 거실에서 다 같이 TV를 보데 결혼 전의 동거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이를 부모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심오한 대화가 잠시 오갔다.


"둘이 신중하게 결정한 일이라면 우야겠노. 두 사람의 몫이제."


두 딸을 출가시키신 아버님께서 세상 관대하게 얘기하신다.

아내는 또다시 내게 묻는다.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지.

즉답을 피했지만, 아주 개방적이고 자기표현이 확실한 신세대 아빠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직은 두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된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결혼하고도 근처에서 같이 살자고 하고 싶은 딸아이한테 아무리 좋은 남자라 해도 둘이서만 살아보라고 어찌한단 말인가.

물론 딸아이의 몫임은 알지만, 아빠에게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아버님 뒤늦게 죄송합니다. 신혼집 먼저 계약해 놔서 식전에 3개월 정도 제가 먼저 들어가서 살고 있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사실 그때 큰 공주 데리고 식전에 먼저 살았습니더.'




우리 공주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왕자가 아니어도 되니, 우리 딸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함께해 줄 좋은 반려자를 만나 잘 산다면 더욱 좋겠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빠의 눈에는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고,

우리 공주가 더 아까울 수밖에 없겠다.

부모가 되면 지금 아빠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 게다.


아버님께 처음 인사드리러 갔던 그날이 다시금 생각난다.


'다시 볼지 모르겠지마는. 잘 지내래이.'


왠지 당시 아버님의 진심을 오히려 정확히 감지했던 건 가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표지그림 출처 : Image by Bianca Blauth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