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수염이 났어요?"
굳이 또 나를 세수시켜 주겠다던 딸아이가 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묻는다.
"어른이 되면 수염이 자라지."
"어른이 되는 게 뭐예요?"
"아빠 사자 알지? 아빠 사자처럼 크고 용감해지는 거야.
아기 사자를 하이에나들한테서 지켜주려고
멋진 갈기가 있는 아빠 사자처럼, 사람도 지켜줄 게 생기면 용감해지려고 수염이 자란단다."
"그럼 진0이랑 은0도 이다음에 수염이 자라요?"
친한 어린이집 남자 친구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묻는다.
"물론이지. 진0이도 은0도 멋진 어른이 되면 수염이 자랄 거야."
무척 사랑스러워 꼭 안고서 딸아이의 볼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바로 귀찮아하는 우리 딸.
"간지러워요. 그만해요~"
'난 수염 난 피터팬~ With my 팅커벨~'
20대 때 정말 좋아했고 노래방에 갈 때마다 애창하던,
다이나믹듀오의 '고백(Go Back)'이라는 노래의 일부다.
난 지금도 수염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20대에는 수염이 더 없었다.
20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여동생한테 받은 눈썹칼로 이방의 관상으로 변신해 가는 인중 주위를 열흘에 한번 꼴로 다듬는 게 면도였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수염을 안 깎고 길렀을 텐데, 현대 사회에 태어나길 천만다행이다.
지폐에 등장하는 퇴계 이황 선생, 율곡 이이 선생이나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윤두서 선생처럼 품격 있는 수염은 아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왕은 아닌 '탈'의 유재석 님, SBS '런닝맨' 中]
20대 후반에 시작된 사회생활 때문인지, 아니면 결혼 생활 때문인지,
30대가 되자마자 수염의 성장 속도가 급속히 빨라졌다.
이틀만 면도를 안 해도 인상이 지저분하게 바뀐다.
"사기당했어. 자기는 수염도 안 나는 미소년이라더니!"
아내가 말하는 사기결혼죄 항목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정신없이 출근 준비하는데, 굳이 와서 전기면도기로 면도하는 것을 같이 돕겠다는 우리 딸.
"아빠 이거는 왜 해요?"
"면도기로 수염을 정리하는 거야. 멋있고 예뻐 보이려고."
'위잉 위잉'
"우와~ 아빠! 면도기가 수염을 먹어요."
야무지게 한 손으로 같이 면도기를 잡고서 진지하게 같이 면도를 해준다.
면도를 마치고 화장솜에 토너를 묻혀 면도 부위를 닦았다.
"아빠 그거는 왜 해요?"
"아빠 수염 보들보들 해지라고 하는 거야."
옆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거들어줬다.
"맞아. 아빠 수염 보들보들 해지라고 바르는 거야. 봐봐 보들보들 해지고 있지?"
같이 화장대 거울을 보며 딸아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딸아이의 대답.
"그럼 아빠는 이~~~ 만큼 많이 발라야겠네."
하하하. 그래 많이 많이 바를게. 보들보들 해져야지...
오늘도 네 덕분에 하루를 시작하며 웃는다.
[30대를 함께하고 있는 나의 면도기]
[표지그림 출처 : Image by Lwcy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