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PAPA Jun 24. 2023

잘 되기를 응원하는 사람

W

만 10년의 회사 생활을 돌아볼 때 유인상 깊게 남는 시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해외에서 장기 근무를 했을 때와 인사팀에서 근무했던 만 2년의 시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리 초년차를 벗어 무렵, 인사팀에서 같이 근무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표면적으로는 제안이었으나 실상은 충원이 절실했던 당시 인사팀에서의 강제 차출이었다.


야근을 말 그대로 밥 먹듯 하는 엄청난 업무량과 회사 생활 최대 악연이었던 B와의 업무 등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던 시기.

딸아이의 탄생 이후 내린 결단으로 인사이동 시기에 자연스러운 듯, 부자연스럽게 빠져나온 기억.

직무 자체는 적성에도 잘 맞은편이었던 것 같은데 조금 더 의연하게 버텼으면 회사 생활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진로를 고민할 때마다 상상해 봤지만 아무리 복기해 봐도 최선이었던 선택.


경력관리(Career Path)에는 아주 모호하게 된 2년간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조직 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시야가 넓어진 계기이기도 하다.

같은 업무를 하는 파트는 아니었지만 같은 시기 옆 부서로 온 후배 W와의 만남도 그때였다.




같은 시기 발령을 받았던 그.

입사 한 지 만 1년이 조금 넘은 사원이었던 그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소문이 있었다.

영업조직에 있던 그가 중간에 한 번 지점까지 옮겼음에도 결국 적응을 못했다는 이었다.

그도 퇴사를 원했으나 신입연수 교육 때 두각이 드러났던 그의 우수한 잠재력을 고려하여

한번 더 부서를 옮겨볼 것을 설득했다는 후문었다.

왜 부정적인 소문이 있었을지 의아했을 정도로 가까이내가 직접 지켜본 그는 무척 괜찮은 사람이었다.

업무 협조 요청에도 대응이 깔끔했고, 조금 노력하는 것이 느껴지는 미소이긴 했지인사성 밝고 서글서글한 모습이었다.


회사에서의 적응여부는 사실 개인의 역량보다는 운의 요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끈끈한 버팀목이 되기도 하고,

아무리 좋은 환경이더라도 독이 되는 인간관계가 있다면 그보다 더한 지옥도 없다.

당시에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돌아보니 그가 문제가 아니라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의 영업부서는 많은 선후배들에게 좋지 못한 평을 받았던 중간관리자가 있기도 했고,

옮겨갔던 지점도 군대로 따지면 최전방 경계부대(GOP)와 같은 격무지였기 때문이다.

[tvN, '미생' 中]


그가 부서이동 후 근무를 시작하고 몇 달 뒤.

그와 같은 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던 선배 한 명이 있었다.


'아... W 이 자식...'


하루는 그 선배누군가와 통화 후 그에 대한 가벼운 푸념을 혼잣말로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를 슬쩍 물었다.

그가 맡은 일도 잘하고 다 좋은데 융통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주요 직책자들을 일자별로 나눠서 소집해야 하는 행사가 있었, 의견 취합 및 일자 배정맡게 되었던 그.

일정 확정 후에는 변경이 어렵다는 공지가 나갔었는데 확정 후 한 부서장이 개인적 사정으로 일자 변경을 요구했던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는 원칙을 고수하며 끝까지 안된다고 하였고 해당 부서장 도저히 통할 것 같지 않자 선배에게 온화하지만 분명한 불만이 담긴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예외를 받아주기 시작하면 결국 기준이 흔들리고 혼란이 생기기에 원칙을 확실히 공지하고 준수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선배의 요지는 일자 변경이 가능한 다른 사람을 파악하여 1:1로 바꿔주는 등 운영의 묘를 발휘해 볼 수 있는데, 그가 소위 지나치게 FM스타일로 대응해서 불필요한 컴플레인을 일으켰다 것이었다.


조직 생활이나 업무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선배의 말이 지당했다.

선배가 경험이 많으니 적정한 대처방안을 잘 가르쳐주라고 얘기를 마무리하고 지나갔지만,

이상스러울 정도로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의 행동을 지지하고 싶었다.

그가 영업 조직에서 적응을 못했다는 소문도 비슷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으면서도,

그건 그와 맞지 않았을 뿐이지 그가 잘못되었던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일정준수 공지를 했으면 사전에 의견을 주는 게 맞지 않은가.


내가 그렇게까지 그를 마음속으로 두둔했던 건 나도 비슷한 경험과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나 또한 회사 생활에서 적응을 마냥 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예전 신입사원일 때 나의 모습과 그의 모습이 겹쳐 보였었다.




신입사원 첫 해, 하나의 에피소드.

유관부서에서 신규 프로젝트에 사실상 특정업체만 참여할 수 있는 요건을 넣어왔다.

말 그대로 나머지 업체들은 들러리 섰다가 그 업체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라는 얘기였는데,

유관부서의 선임 대리급 담당자분께 그럴 거면 아예 해당부서에서 특정업체와 수의 계약을 추진할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유관부서 담당자분후배직원들이자 나보다 1년 먼저 입사를 했던 두 명의 사원급 선배들로부터 따로 군기 잡기식 연락을 받았었다.

왜 이전에도 유사한 프로젝트들이 많았는데 왜 굳이 일을 복잡하게 진행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 생각은 확고했기에 쉽게 굽히지 않았다.

완강한 입장에 유관부서에서도 협조문서 작성지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참여요건을 수정해 왔다. 

그리고 습게도 결국에는 사실상 내정되어 있던 해당업체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조금 더 내공이 쌓이게 되었을 때 알게 된 것이지만 대개 극초기에 프로젝트 설계나 기획을 도운 경우 해당업체가 수주의 기회가 높다는 건 다른 업체들도 이미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돌아가면서 들러리를 서는 것을 묵인하는 관행이 있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진짜로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와 별개로 당돌한 신입사원이었던 내 주변에 정서적으로 나를 지지해 주고 문제 상황 수습에 도움을 주던 좋은 선배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들 덕분에 나도 알게 모르게 많은 회사 생활의 고비를 지나온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에게도 좋은 선배, 동료들이 많아지길 바랐고 나도 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외근을 나가있는 그에게 문의할 것이 있어 연락을 하려고 조직도를 찾아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가족도 아닌데 휴대전화 뒷자리 4자리가 같았던 것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쓰던 우리 집전화의 뒷자리였고,

집전화가 사라진 지금도 우리 가족의 휴대전화 번호로 남아있는 4자리.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내가 뭔가 그에게 동질감을 갖게 된 또 하나의 계기였다.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나중에 그에게도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도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Pixabay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 그의 여자친구가 내가 인턴생활을 했던 곳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을 때 또 한 번 서로 놀라기도 했다.

맡고 있는 업무 성격이 달랐기에 그와 업무적으로 교류했던 일은 많지 않았다.

조직단위 회식이나 공식적인 행사 말고 사적으로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만나도 그의 여자친구의 근황을 포함하여 공감할 수 있는 대화소재들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대화 소재보다는 내가 그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무언가 동질감을 느끼고 편하게 대했던 영향도 있었을 테다.

그가 부서에서 점점 적응을 해나가며 자연스러운 미소가 늘어가는 걸 보고 묘한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나는 위에서 말한 대로 다시 부서이동을 했다.

그와는 예전만큼 물리적으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교류를 이어 갔다.

현재 근무하는 부서에서 영어에 능통한 남자 직원 충원이 필요했을 때 그의 영입도 추진해보고자 했었다.

마침 그도 직무전문가로 성장할지 새로운 분야에서 근무해 볼지 고민이 있었을 때였다.

결과적으로 비슷한 시기 외부에서 좋은 제안을 받은 그는 해당직무의 전문가로 계속 성장해 가는 길을 택했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옮긴 그의 근무지도 가까웠기에 분기에 한 번 정도 점심만남을 이어갔다.

올해 초, 첫 모임 때 2세가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었다.

Little의 '리'에 그의 영어이름 첫 글자 '♡'를 더해 '리♡'라는 태명을 붙였다는 그의 아이.

한글로 작명해도 좋을 이름.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에게 조금 더 잘 어울릴 듯한 이름.

그 이름을 붙여줄 딸아이를 그도 원하고 있었고 나도 내심 그가 딸을 둔 아빠의 길을 걸어보길 원했다.


며칠 전 올해의 두 번째 만남에서 그와 또 다른 동질감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이의 성별이 딸로 밝혀졌다는 것.

막상 딸이라고 하니 이 험난한 세상에 딸이 잘 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 또한 이제 나처럼 딸을 키우며 전전긍긍할 아빠로서의 삶이 예정된 것이다.

고작 5년 정도 앞선 경험이긴 하지만 그 경험상 단언할 수 있기도 한 부분은,

부모가 된다는 건 회사생활의 고충을 넘어선 또 다른 적응을 필요로 다는 것이다.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서로 가정이 생기고 아이를 키우면서 교류가 예전보다 뜸해진 이전의 인연들이 있다.

지금도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그와 만날 수 있는 시간들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선 그와는 가을에 있을 딸아이의 탄생 전에 한번 더 만나기로 기약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앞으로 자주 못 보게 되더라도 그가 정말로 좋은 아버지로, 멋진 사회인으로 더 잘 되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해 보았다.


인생의 여정에서 중요한 변화의 순간들.
그 또한 잘 적응해 나가기를 응원하며.


이전 23화 멘탈이 강한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