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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Sep 09. 2023

변하게 만드는 사람

X

'잘 지?'


마음 깊이 아끼고 좋아했던 사람의 메시지를 오랜만에 받았다.

다시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아예 읽지조차 않거나 읽고도 대답을 않겠지만,

나 또한 먼저 연락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마음 있었으니 얘기가 달라진다.

상대방도 나를 아직 생각하고 있고, 다시 나 만나고 싶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기쁨.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야 하고, 왜 그렇게 얘기했을지 혼자 고민하고... 도대체 무슨... 사랑하는 사이야? "


심지어 작년에아내도 내게 어이없다는 듯 물은 적이 있었다.

내가 회사생활을 하며 가장 따르고 좋아했던 한 사람.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X-Girlfriend(전 여자 친구) 같은 존재인 X 선배와의 이야기.

[출처 : 아시아투데이, '심장이 쿵! 발칙한 연애탐구' 시리즈]


그러고 보면 X 선배와는 첫 대면부터 특이했다.

처음 얼굴을 마주한 것은 출장으로 먼저 방문했던 해외 근무지에서였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회사에서 잡아준 숙소에 도착해 짐을 을 무렵,  

맥주 한 봉지를 사들고 찾아온 사람.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재경 담당 주재원으로 프로젝트에 먼저 배치되어 있던 그였다.

직무도 근무지도 달라 정작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이였다.

해외 근무지가 확정되고 나서 그와 친분이 있던 주변의 한두 명의 선배들로부터 

가면 잘해줄 거라고 특이해 보이지만 은 사람이라고 얘기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프로젝트 책임자(PM)였던 C가 그에게 재경 업무 외에도 많은 업무를 부여하면서 나를 그의 밑으로 배치하여 일을 하도록 지시했다.

덕분에 그와 같은 사무실을 쓰면서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는 근처의 많은 맛집을 소개해주기도 했고, 해외 재류기간 동안 일주일의 절반 이상은 퇴근 후 그와 술 한잔을 함께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와 함께한 수많은 해외 생활의 추억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에피소드.

현지의 여름이 찾아오자 주말에 직접 콩을 믹서기에 갈아 콩국수를 만들어 준 .

회사에 들어온 VIP좌석 티켓 두 장으로 의미 있는 시합의 경기를 둘이서 관람한 일.

한국에서 잠시 지원 온 다른 출장자분과 남자 셋이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소리 안 지르기 내기를 했던 것 등.

[MBC, 무한도전]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비범했고, 업무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 검색도 빨랐고 일에 대한 책임감이나 추진력도 뛰어났다.

도인 같이 허허허 하다가도 중요한 업무가 생기면 눈빛부터 달라져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같이 보고를 준비하거나 배석해 보면 법인장이 왜 그를 신뢰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철저하고 꼼꼼했다.


그에게서 고수의 사회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련된 업체들과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이 더 안 되는 같은 그룹사.  함께 프로젝트를 맡고 있지만 동상이몽으로 본인들의 실적 쌓기에만 신경 쓰는 그룹사 직원들과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다 같이 술 한잔 하시죠!"


그는 겉으로 크게 내색하지 않고 승적으로 필요한 것을 위해 상대방을 잘 맞춰줬다.


"언제까지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만 할 거야? 어차피 서로 이용하는 거면 사이좋게 잘 이용해야지!"


나중에 내가 그에게도 직접 했던 야구로의 비유가 있다.

나는 강속구로 승부하는 파이어볼러였다.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디 한 번 쳐볼 수 있으면 쳐보라는 마음으로 전력투구했다.

물론 그러다가 제구가 안되거나 역으로 크게 장타를 맞는 경우도 생겼다.

반면에 그는 완급조절이 뛰어난 데다가 다양한 구질의 변화구를 갖춘 노련한 투수였다.

그를 보고 따라 하는 연습을 하면서 체인지업(Changeup) 변화구 하나 정도는 사용할 줄 아는 선수로 조금은 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파견 생활을 마치고 먼저 한국에 돌아오고, 정식 주재원이었던 그는 기한을 다 채우고 복귀를 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와 다시 자주 만났다.

그 무렵 나를 퍼의 길로 입문시킨 것도 그였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골프를 다시 시작하며 나에게도 시작할 것을 계속 권했고, 자주 주말 새벽이나 야간 연습을 하러 다녔다.

회사 내외에서 서로의 친한 사람들도 많이 소개하면서 나의 절친한 친구들도 그를 알게 되었다.

친구의 집들이에도 같이 가서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물론 서로의 가정에서는 좋아할 리 없는 원수 중 하나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작년에 그가 회사를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났을 때 나의 회사 생활에 있어 큰 지각 변동이 왔다.

물론 더 좋은 기회의 자리이긴 했지만, 가만히 있어도 몇 년 뒤 최연소 임원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촉망받던 그가 함께해 온 회사를 떠난다는 게 나름의 큰 충격이었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계기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보다 내 역량을 키우는 내 삶을 더 집중해야 한다고 느낀 큰 전환점이다.

@ Pixabay


그가 떠나고 나서도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만나고는 했는데 마음속에서 조금씩 거리감이 생기고 있었다.


"요새 분위기 별로라며. 괜찮냐?"

"G 선배한테 잘해줘. 답답한 면이 있겠지만 괜찮은 사람이야."


그는 그저 나와 공통점 있는 화제를 꺼내려는 것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회사를 떠난 그가 회사의 화젯거리를 들을 때마다 견해를 얘기하는 것이 점점 경기장 밖에서의 훈수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그와도 가깝지만 내게는 부서장 G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 질 무렵더욱 그러했다.

예전이었으면 나에게 편하게 말해주는 조언이라고 생각했을 것들이 불필요한 간섭처럼 다가왔다.

그러던 찰나 올해 들어 내가 술자리를 피하고 여러 가지 다른 활동에 집중하며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이자 그와의 연락도 확연히 뜸해졌다.


그러다 그와 나의 인연에 빠질 수 없는 P 선배가 외국 생활 중 잠시 한국에 휴가를 와서 모임을 소집하면서 거의 반년만에 그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지만 그냥 몇 주 못 보고 다시 만난 것처럼 막상 얼굴을 보니 편하고 즐거웠다.

모임이 끝나고 귀가 방향이 같은 와 둘이서 지하철을 탔다.

그는 내게 왜 요새 연락도 잘 않고 사람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않는지를 물었다.

그의 표정에도 서운 묻어났고, 그는 내가 다른 일로 감정이 상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도 나는 그의 옆자리에서 있으면서 술 한잔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것 같다.

'삶에 대한 변화를 주고 싶다'

요약하자면 단 한 문장이지만 깊은 나의 속내들을 그에게는 털어놨다.


 "한 번에 바뀔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예외적인 거야."


내 이야기를 듣던 그가 이야기했다.

돌이켜보면 현실적으로 그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변화를 주라는 이야기를 해주려던 것었으리라.

내릴 역이 다가오자 그는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말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내가 먼저 만나자 연락 달라고.




그 후로 두 달이 지났다.

외적인 변화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생각이 많이 정리되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잘 지내?"


때마침 그에게서 온 연락.

그에게 저녁 날씨가 조금만 더 선선해지면 술 한잔 하자고 제안했으나 이제는 그가 당분간 건강상의 이유로 저녁 자리는 피해야 한다고 답했다.

건너서 듣게 된 것이지만 현재 그의 윗사람이 사소한 것으로도 질책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그도 나름 버텨내는데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노련한 고수에게라도 각자 회사생활의 고충 있는 법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이번 주에 그가 회사 근처로 점심시간  업무상 방문할 일이 있는 연락을 다시 받았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 기를 나누며 예전보다는 분명 소원해진 마음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보기로 한 전날, 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지독한 전염병의 두 번째 양성판정을 받았다.

내가 회사를 쉬게 되면서 기다려온 만남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 쉬어가라는 하늘의 계시려니 했다.

그와의 관계도 언제든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음을 믿기에.

로맨스의 최고봉이 또 사나이들의 브로맨스 아니던가.


극성을 부리던 올여름의 무더위도 어느덧 누그러들고,

계절은 돌고 돌아 또다시 시나브로 가을 날씨가 찾아오고 있다.

더 좋은 날씨에 조금 더 나아진 모습으로 그와 다시 마주할 수 있길 기다려본다.


한 번에 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두 때가 있고 시간이 필요한 것.
사람도, 사랑도,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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