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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Sep 02. 2023

롤 모델이 되는 사람

Y

롤 모델 [Role Model]
'존경하며 본받고 싶도록 모범이 될 만한 사람
또는 자기의 직업, 업무, 임무, 역할 따위의 본보기가 되는 대상'을 이르는 말.
롤 모델을 갈음한 우리말 순화어는 "본보기상"이다.

- 오픈사전 -


"회사에 롤 모델이 있어요?"


입사한 지 2년 정도 지나 어느 정도 조직에 적응하고 신입의 티를 벗었을 무렵이었다.

당시 직급으로 대리였던 사수 선배 Y가 내게 물었다.

희미하지만 회사에서 평판이나 이미지가 좋았던 임원, 부장급을 골라서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대답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전 잘 모르겠어요.'와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구체적 답변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하만치 그녀가 던진 화만큼은 이후의 회사생활에서 뇌리에 계속 강하게 남았다.




신입사원 때 배치받은 부서의 유일한 여자 선배.

입사 연도는 한참 차이가 났지만 동갑에다가 우연인지 인연인지 동향(鄕)이기도 했다.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신입사원이었던 나를 그녀는 유독 잘 챙겨주었다.

그녀가 회사생활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이 소개해 주었다.

지금까지도 따로 종종 만나 큰 도움을 는 그녀의 현재 남편이자, 당시 남자친구였던 U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 것그녀였다.


해외에서 오랜 대학생활을 한 그녀는 외국어도 능통했고 업무 처리도 체계적이고 꼼꼼하여 배울 점이 많았다.

체격도 왜소하고 리야리해 보이지만 강단이 확실한 외유내강형의 여장부다.

그녀는 자기 업무에 정말 성실했고 본인의 확실한 주관과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본인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도 않았다.

확실한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유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그녀를 윗사람들도 모두 신뢰했다.

그녀 덕분에 업무에서나 인간관계에서나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때마침 회사도 외형적으로 성장하면서 많은 해외 프로젝트들이 추진되었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해외 파견 근무에 대한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에게 유리결정을 내려주는 집단은 아니었다.

당시 우리 부서에서 여러 지역에 대한 해외 파견자는 결국 나를 포함한 30대 극초반의 남자들로 내정된다.

그녀에게는 모두 입사 후배인 사람들이었다.


내가 해외 파견을 떠난 후, 그녀도 부서를 옮다.

보다 초기 단계에 신사업을 기획하고 유치할 수 있고,

해외 출장이나 주재원의 기회가 많은 유관부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도 더 적극적으로 사전에 프로젝트에 관여하면서 기회를 모색하려던 생각이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당시 조직의 부서장은 독신의 여성으로, 

히스테리를 많이 부려 여사감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배울 점이 많으신 분이에요."




종종 안부를 묻던 내게 애써 웃으며 답변하던 그녀였지만, 사실은 그녀도 많이 힘들었을 테다.

일을 잘하는 그녀에게 엄청난 강도의 업무들이 몰렸다고 전해 들었었다.

몇 년 사이에 조직문화가 확연히 바뀌긴 했지만 여직원들을 해외로 보내는 것이 더 보수적인 시기였고,

업무는 그녀가 사실상 도맡아 했음에도 그녀가 원하던 해외 근무의 기회는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여성이었던 그녀의 부서장이 그녀의 해외 근무에 대해 더 부정적이었다.


그러다 2세가 생기면서 그녀는 일찍 휴직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녀는 회사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본인의 일을 해보겠다며 휴직이 끝날 무렵 사직서를 냈던 것이다.

물론 무작정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고 본인의 사업을 준비하다 본격적으로 시도해 보려는 구상에서였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엄청난 열정과 추진력을 밑바탕으로 사업은 빠르게 안정궤도에 올랐다.

서울과 부산의 두 개 지점을 오가며 일을 했고,

2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는 경험한 노하우를 콘텐츠화하기도 했다.

@Pixabay


그러다 찾아온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전염병의 시대.

그녀의 사업도 예전만큼 순항을 지속하 못한 걸로 알고 있지만,

그녀의 의지와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운 분야로 본인이 도전해보고 싶은 길을 다시 걸어 나갔다.

그녀의 도전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수입 혹은 외형적인 확장면에서 성공한 것만은 아니다.

타인에게는 짧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고충의 시간도 지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감히 견줄 수 없을 만큼 성장했음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두렵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는데 지나고 나니 다 공부가 되고 별 것 아니더라고.

내용증명 처음 받아봤을 때는 바로 법정 가고 난리가 나는 건 줄 알았었어요. 하하하."




'회사에 롤 모델이 있어요?'


그녀의 말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귓가에 맴돌았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더 가득했던 시절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롤 모델이 되어야겠다고도 마음속으로 남몰래 다짐한 적이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친분이 두터운 선배들 중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사람들을 나의 롤 모델이라 여기고,

그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도 했었다.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 조직에서 남만 따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경험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그녀가 왜 그 질문을 했을지,

그때 그녀의 마음과 시선을 돌아보게 된다.

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훨씬 더 어리고 자유로웠던 나이에 이미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던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지고 부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인생의 선구자(Pioneer)였고,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경영자이자 사업가였던 것이다.


[출처 : 오늘의 한 줄 명언, 이투데이]


회사생활을 지속하는 게 잘못되었거나 열등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회사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내가 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 길 위에 서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소신이나 결이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내 인생에 대한 주인의식(Ownership)은 전혀 없는,

남들이 시킨 대로만 사는 월급쟁이 종의 삶에 불과하게 될 테니 말이다.




며칠 전 그녀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가 또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무렵 만난 후 처음이었다.

부득이 약속을 한 두 번 미뤄야 했을 만큼 바쁜 그녀였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하지 않은 사이인 것이 좋다.

신입시절을 함께한 그녀를 만나면 당시 나의 열정과 패기가 환기된다.

동시에 그녀에게서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더 빛나고 단단해지는 그녀의 눈빛이 보여주는 대로 그녀는 깨어있는 채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을 둔 예비 학부모인 그녀. 

대화 주제에서 자녀교육 이야가 빠질 수 없다.

부모로서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하고 싶은지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모두 부모는 처음인지라 사회생활보다 더 어려운 주제다.

결국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독립적인 주체로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나 이야말로 어디까지어떻게에 대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한 가지만은 확해졌다.

나부터가 딸아이에게 좋은 인생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점.

사랑하는 딸아이 훗날 본인 인생의 멋진 경영자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앞으로의 여정을 걸어가 보자꾸나.
어차피 정답이 없는 인생.
선택과 결단이 있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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