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이 실현한 로망(1)

11월의 크리스마스

by 나디아

2022. 11. 22.


그날은 포슬눈이 세차게 내렸다. 짧은 가을 방학을 맞아 퀘벡으로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미국으로 오기 전 나는 가보고 싶은 곳을 생각해 봤다. "기회가 되면 퀘벡까지도 한 번 가보고" 면담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이 생각났다. 퀘벡이라는 도시는 내게도 친숙했다. 드라마 도깨비를 보며 가을 단풍잎이 떨어지는 계절에 나도 꼭 한 번 가고 싶다 생각했었다. 나의 퀘벡은 단풍잎이 아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퀘벡까지 가는 길은 토론토보다도 더 멀고 고된 여정이다. 국경을 넘어 버스와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었다. 눈비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국경을 넘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고생인 줄 알면서도 반복하게 되는 이유를. 그런 여행의 참 매력은 무엇 일지에 대해.


퀘벡 공항에 내려 숙소행 버스 티켓을 사기 위해 무인판매기를 터치했다. 불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막상 영어가 아닌 제3의 언어를 보니 당황스러웠다. 이번 여행은 나와 두 명의 친구가 함께했다. 티켓은 2인승과 종일권밖에 없었고 결국 우리는 하나만 사서 나눠 쓰기로 했다.


각자 자신의 일주일치 짐이 담긴 캐리어를 눈에서 굴린 끝에 버스에 탈 수 있었다. 티켓을 보여주니 기사님이 이건 안된다고 하셨다. 나눠 쓰기 전략이 뉴욕과 달리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내리려던 찰나 기사님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고 지금은 그냥 타라고 하셨다. 먼 길로 여행을 떠나온 이방인에게 그는 환대의 뜻으로 친절을 베푼 것이었다. 그의 친절 덕분에 눈 내리는 퀘벡의 첫인상이 따뜻했다.


숙소로 가면서 버스에 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추운 지방이라 그런지 모자, 장갑, 귀마개로 무장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내 시선을 끈 것은 저마다의 화려한 부츠였다. 어그 부츠는 우리나라에서 신는 것과는 달리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고 색상도 스타일도 가지각색이었다. 나는 일상의 추위를 이겨내는 그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주린 배를 채우러 근처 식당에 갔다. 푸틴이라는 감자튀김이 퀘벡에서 유명하다고 같이 온 친구가 말했다. 일반적인 감자튀김에 치즈와 그레이비소스가 올라간 것이었는데 어디서 먹어본 맛이었다. 미국에서 질리도록 먹은 감자튀김의 New 버전을 장정 8시간을 달려와 맛보는 상황이 웃겼다.


2022. 11. 23.


전날 버스 기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우리는 첫 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통카드를 샀다. 미국에 비해 대중교통이 깨끗하고 잘 되어있어서 여행하기에 좋았다.


'부셰나베~'

버스에서 울리는 안내방송을 어색하게 따라 하며 올드 퀘벡에서 내렸다. 거리마다 형형색색의 상점들이 독특함을 뽐내고 있었다. 캐나다인지 프랑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유럽풍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걸음을 옮겨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크레페를 먹었다. 숨 막히게 달콤했다. 어릴 적 내가 사랑했던 '꿈빛파티시엘' 주인공 딸기가 된 기분이었다.


"크레페를 한 장 한 장 쌓아가듯"


작은 서점에 들러 불어로 된 서적을 구경했다. 프랑스에 오니... 아니 퀘벡에 오니 <어린 왕자> 책이 많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생각났다.

"너의 장미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길들인 시간이 있어서야."


샤토 프롱트낙에 도착했다. 드라마로 유명해진 이 건물은 캐나다 국립 사적지로 지정될 만큼 유서 깊은 곳이라고 한다. 나는 <도깨비>에서 지은탁이 그런 것처럼 편지를 써서 한국에 보내려던 참이었다. 샤토 프롱트낙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먼저 우체통을 찾았다. 그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무도 편지를 쓰고 있지 않았고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한 순간에 낙심한 나머지 포기하려던 순간에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호텔 직원에게 어디서 편지를 쓸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내게 근처 우체국을 알려줬다.


우체국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편지를 썼다. 하나는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에게, 다른 하나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에게 보냈다. 두 가지 스탬프 모양에서 한 가지를 고를 수 있었는데 둘 다 예뻐서 고민하고 있었다. 직원은 친절한 미소를 띠며 두 개의 편지에 각기 다른 모양을 찍어줬다. 그러고 나서 그가 물었다.

"너도 이거 프롱트낙 우체통에 넣을 거지?"

한국 사람들은 다 그런단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드라마처럼 샤토 프롱트낙 우체통에 넣으면 일 년 뒤에 받을 거란 확신으로 호텔 직원에게 확인차 물어봤다.

내 질문을 흥미롭게 듣던 그는 대뜸 좋은 질문이라면서 인터넷에 검색하더니 대략 일주일정도 걸릴 거라고 말해줬다. 과거에서 오는 편지를 기대한 내가 웃겼다. 드라마를 철석같이 믿은 내가 웃겼다. 그래도 이 덕분에 샤토 프롱트낙에서 보내는 편지의 낭만을 실현할 수 있었다.


호텔 바로 뒤 세인트 로렌스 강을 배경으로 코를 훌쩍이며 사진을 찍었다. 강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추위에 굳은 몸을 깨워 얼른 안으로 들어갈 가게를 찾아갔다.


1년 365일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판다는 노엘 부띠크에서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구경했다.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예쁜데 가격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인들이 혀를 내두는 소리가 익숙하게 들려왔다. 속으로 낄낄대며 엽서를 구경했다.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엽서 모으는 일은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를 샀다.


겨울 여행은 다 좋은데 너무 춥고 해가 빨리 져서 체감 여행 길이가 짧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바에서 피자를 주문했다. 많고 많은 음식 중에 내가 피자를 주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은 먹을만한 것이 없을 때 그나마 익숙한 음식으로 피자를 찾는다. Tuna pizza를 주문했다. 피자가 나왔고 나는 먹으면서 '연어는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하고 중얼거렸다. 순간 tuna(참치)를 salmon(연어)로 착각한 것이었다. 추위에 몸은 물론 머리도 함께 퇴화되는구나 싶었다.


저녁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크리스마스' 하면 항상 떠올렸던 이미지를 현실로 마주하게 되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의 상점들은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 같았다. 반짝이는 릴스와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그곳을 채우듯 울려 퍼지는 캐럴. 눈으로 본 하나의 장면이 크리스마스 모든 로망을 다 이뤄준 기분이었다. 11월의 크리스마스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나도 눈 덮인 그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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