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크리스마스
2022. 11. 24.
퀘벡 시티에서 조금 떨어진 곳, 몬트리올에 가기 위해 나섰다. 퀘벡 기차역은 성처럼 고풍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앤이 달려 나와 손을 흔들어줄 것 같은 초록 지붕의 역이었다. 안에 들어서자 커다란 트리가 나를 반겼다. 마치 꿈빛파티시엘 주인공 딸기가 슈크림을 쌓아 올려 만든 크로캉부슈 같았다.
혼자 기차를 탄 것은 처음이었다. 쓰지도 그렇다고 밍밍하지도 않은 블랙커피로 간단히 허기진 배를 때웠다.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차가운 겨울에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추운 겨울에도 맑은 하늘은 존재했다. 한 여름 맑은 하늘과 추운 겨울 맑은 하늘은 사뭇 다르다. 겨울 하늘이 더 새파랗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몬트리올 기차역에 내리니 퀘벡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트리가 반겨주고 있었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오려면 한 달이 남았지만 이곳은 눈 내림과 동시에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가장 화려하다고 알려진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에 갔다. 입장과 동시에 파란 조명이 내뿜는 아우라에 압도되었다.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어느 노랫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성당 앞쪽으로 가니 세밀하게 조각된 조각상들을 보며 나는 신앙에 대해 생각했다.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에 대해서. 무교인 내가 봐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내 글이 끌어당기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 엄청난 힘을 갖기 위해 몇 편의 글을 써야 하는지. 수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읽히는 글을 나도 언젠가 쓰고 싶다.
나는 성당 앞에 서서 뒤쪽에 걸린 오르간을 응시한다. 다음날 나는 퀘벡 노트르담 성당에서 똑같이 오르간을 바라본다. 몬트리올 성당이 관광지라면 퀘벡 성당은 실제로 예배를 드리러 오는 그런 성스러운 장소인 거 같다고 친구가 말한다. 나는 끄덕이며 한 편에 놓인 작은 종이에 이렇게 적는다.
'God thank you and praise you...'
성당에서 나와 몬트리올 시내를 구경하니 어느덧 어두워지고 있었다. 돌아다니느라 내내 얼어붙은 몸이 따뜻한 국물을 원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누가 봐도 뜨거워 보이는 훠궈와 마라탕을 파는 중국 음식점에 갔다. 우리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보이지 않던 점원이 나와 주문서를 건넸다. 영어로 적힌 중국식 마라탕 재료들을 일일이 검색하며 먹고 싶은 것에 표시했다. 곧바로 내 앞에 냄비가 세팅이 되었고, 나는 주문한 재료들을 다 넣고 한 번에 끓였다.
맛은 독특했다. 한국에서 먹은 일반적인 마라탕과는 다르게 된장 맛이 났다. 맛있었다. 새빨간 국물로 되어있어 눈에 보이게 매운 것이 아니라 갈색 국물에 혀에 살짝 매운맛이 느껴져서 오묘했다. 계속 생각나는 맛이었다. 만족스러운 저녁을 마치고 나서는데 계산서를 보고 잠깐 흠칫했다. 44$가 찍혀있었다. 한국에서 먹는 마라탕 두 배의 값을 지불한 것이다.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간 곳은 무한리필 음식점이었다. 무한리필 가게에 가서 1인분만 그것도 아는 최소한의 재료로만 먹은 게 억울했다. 아쉬운 마음을 붙잡고 토론토에서 맛본 가장 맛있는 버블티로 달랬다.
몇 번의 연착 끝에 퀘벡 기차역에서 내렸다. 시계는 오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몸을 달달 떨며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위에서 네 개의 백합이 수놓아진 파란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2022. 11. 25.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How glistened as it fell
얼마나 찬란하게 내렸던지
소복하게 내리는 눈발이 노래 가사와 부드럽게 매치된다. 눈이 오는 날은 왠지 모를 포근한 따뜻함이 있다. 차가운 유리잔에 닿아 이슬 같은 물방울을 남기는 공기처럼. 가뜩이나 예쁜 도시 퀘벡에 눈이 내리니 더 낭만적인 느낌이 든다.
프레스코 벽화 앞에서 내리는 눈을 가만히 쳐다본다. 이 순간이 마치 슬로우가 걸린 듯 천천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벽화 앞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그 옆에는 그들이 만든 작은 눈사람이 있다. 나도 그 옆에 자연스럽게 섰다.
사진 찍어 줄까요?
아이들의 엄마가 내게 묻는다.
나도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 옆에서 포즈를 취한다. 이 세상의 모든 눈을 내가 품어내듯이 두 팔을 벌린다.
벽화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유모차를 끌고 있는 중년의 여성과 양복을 입은 신사. 그중 다리에서 만나 진한 포옹을 하고 있는 연인에게 시선이 꽂힌다. 두 사람은 아마 오랜만에 보는 사이겠지. 어쩌면 롱디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지구 반대편에 있을 그를 떠올린다.
근처에 개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갤러리에 들렀다. 한 그림이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꽃보다 나무를 좋아한다. 더 큰 생명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선이 빼앗긴 곳에는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그려져 있다. 나무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오래전 국어시간에 배운 <나목>이라는 작품을 떠올린다.
회상은 교육의 의미를 되짚어 보기에 이른다. 무의식 어딘가에 흩어져있다가 어딘지 모르는 그 순간에 다시 피어나는 것. 그때 다시 느껴볼 수 있는 것. 그것만큼 위대한 교육이 있을까 싶다.
샹 플랭을 걷다가 그 유명한 것을 찾아 나선다. 바로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빨간색 문이다. 이 문을 열고 도깨비가 퀘벡 시티에 온다. 문을 열어봤지만 실제로는 열리지 않았다. 또 한 번 나는 드라마에 속은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판타지와 같은 낭만을 주다가 현실의 벽에서 금세 사그라든다. 하지만 그 설렘을 품고 있는 동안에 나는 판타지를 믿는 어린아이가 된다.
도깨비 문보다 마음에 들었던 문은 37이라는 숫자가 적힌 어느 가게의 빨간 문이었다. 친구 두 명이 어느 가게에서 모자를 구경하고 있을 때 잠깐 나와 바라본 문이었다. 눈 내리는 샹 플랭 거리는 환상적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모든 낭만을 이 거리가 채워주고 있었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 앞 광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갔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올라오는 인스타 피드 속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는 것이 내 오랜 로망이었다. 매번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면 가슴 한쪽이 시렸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날들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지만 막상 당일이 되면 할 일 없이 누워서 인스타 피드 속 환상적인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노래를 흥얼거린다. 상점마다 특색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쪽에서는 거리 공연이 한창이었다. 산타 모자를 쓰고 두 여성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This is Christmas~ 올해 크리스마스는 조금도 쓸쓸하지 않을 거 같았다. 미리 맞는 11월의 크리스마스가 시린 가슴 한쪽을 채워줄 것만 같았다.
2022. 11. 26.
퀘벡에서의 마지막 날. 어제 내린 눈은 어느새 소복이 쌓여 있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거리의 눈과 지붕을 덮은 눈은 마치 과자 집을 한층 멋스럽게 만들어주는 아이싱 같았다.
지나갈 때마다 구운 빵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패스트리 가게에서 아침을 먹었다. 나는 Almandier라고 불리는 아몬드 크루아상을 먹었다. 이제껏 내가 먹은 크루아상은 진정한 크루아상이 아니었다고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부스러기 떨어지는 딱딱한 크루아상과 달리 이곳의 크루아상은 정말 부드러웠다. 커피의 쓴 맛과 달콤한 빵의 조화가 정말 맛있었다.
오늘은 도깨비 언덕을 가리라고 아침에 나올 때부터 우리는 다짐했다. 전날 너무 추워서 가지 못한 그곳을 마지막날인 오늘은 기필코 가야만 했다. 지은탁처럼 빨간 목도리를 하고 싶었던 나는 구경하러 들어가는 모든 가게에서 빨간 목도리만을 찾았다. 마음에 들었지만 사악한 가격에 놀라 그만 다음을 기약했다.
기념품 샵도 들렀다. 퀘벡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작은 소품샵이 많다. 첫날이라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그냥 지나쳤을 곳도 마지막인 오늘은 꼭 들어갔다. 나는 "기념품이야"하고 대놓고 광고하는 것보다 아기자기한 로컬 소품샵에서 사는 나만의 기념품을 더 좋아한다. 나만 살 수 있고 나만 기념품이라고 여기는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고르는 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도깨비 언덕을 찾아 가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도깨비 언덕'은 나오지 않았다. 바스티온 성곽을 도깨비 언덕으로 착각한 나와 친구들은 가파른 cap blanc 계단을 올랐다. 지옥의 계단이었다. 나와 두 명의 친구가 이 길을 올랐는데 발 빠른 나와 현이가 정상에 도착했을 때 어떤 중년의 남성이 우리에게 친구가 위험한 거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정이가 보이지 않았다. 각자 몸을 건사하느라 친구를 챙기지 못한 것이었다.
바로 내려가보니 정이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평소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정이는 가파른 계단을 빠르게 오르다가 갑자기 쇼크 증상을 보인 것이다. 나와 현이 그리고 정이 우리는 일렬로 걸어오고 있었으므로 정이가 힘듦을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앞에 가는 나와 현이 모르게 정이는 잠깐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이 의식을 잃었고, 다행히 내려오던 사람들이 그녀를 발견해 안정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연신 땡큐를 외치며 정이의 차가운 손을 잡고 담요를 덮어줬다. 일정에 눈이 멀어 친구의 몸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몇 분 뒤에 현지인들이 불러준 구급 요원들이 왔고 그들 덕분에 정이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우리는 일정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갈 참이었다.
Citadelle 성곽에서 내려와 숙소로 향하는데 정이가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인데 가야 되지 않을까?
나와 현이는 괜찮다고 얼른 숙소로 돌아가자고 답했다.
그렇게 돌아가는데 우리가 관광지를 두고 헤매는 이들처럼 보였는지 비니 쓴 청년이 우리에게 와 말을 건넸다.
내가 도와줄까?
한국인들 도깨비 어쩌고 저쩌고하며 본인도 봤다면서 다 안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겪었던 것처럼 호객행위를 당하는 거 아닌가 도착해서 돈을 요구하면 어쩌지 하는 반신반의로 청년을 따라갔다.
우리를 도깨비 언덕에 데려다주고 사진까지 찍어준 뒤 그는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그렇게 오해한 것이 괜히 미안했다. 그는 그저 관광객을 도와주고 싶었던 착한 현지인이었다. 홀연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 덕분에 우리는 도깨비 언덕에서 불 들어온 샤토 프롱트낙 호텔과 눈 덮인 퀘벡 시티를 내려다보았다.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퀘벡에서의 마지막 밤도 흘러가고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오면서 유난히 밝은 초승달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날을 이렇게 써 내려갔다.
*
저무는 달을 보면서 기억에 남길 사람들
퀘벡 여행이 한층 더 아름다웠던 이유
버스기사님
호텔 직원
우체국 직원
길 안내해 준 현지인
I won't forget your kindness. Merci Beauc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