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있는 대장정의 출발

한 달의 춥고 긴 대장정 속 따뜻함

by 나디아

2022. 12. 16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하나둘 본가로 돌아가고 룸메 없는 적막한 기숙사 방에서 나는 겨울짐을 쌌다. 돌아갈 집이 없는 타지에서의 긴 겨울 방학 동안 나는 정처 없이 떠돌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오늘 새벽에 홀로 우버를 타고 시카고로 날아가야 한다. 새벽에 혼자 떠나는 여행은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한 달 치 짐을 욱여넣은 몸만 한 캐리어가 눈에 아른거리면서 걱정은 두려움으로 불어난다. 추운 겨울에 한 달 동안 나는 떠돌아다녀야 한다. 겨울 대장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시카고로 가기 위해서는 버펄로 공항을 첫 번째로 거쳐야만 했다. 혼자 우버를 타는 것이 두렵기는 물론 가격도 감당하기 버거웠던 나는 몇 번 초대받은 미국 할머니 가정댁에서 픽업을 부탁드렸다. 지니가 흔쾌히 수락한 덕분에 나는 걱정 하나를 뒤로하고 쪽잠에 들었다.


일어나서 빠뜨린 것 없나 다시 한번 확인하고 커다란 캐리어를 조심히 끌었다. 새벽에 혼자 기숙사를 나오면서 무사히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밖에 나오니 눈비가 내리고 있었다. 패딩에 달려 있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안경알에 맺히는 눈발을 간신히 피하고 있었다. 십 분... 이십 분... 시간은 째깍째깍 흘렀다. 지니와 만나기로 한 주차장 앞에서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혹시 약속을 잊고 긴 잠에 빠진 게 아닐까. 이렇게 비행기를 놓치며 어떡하지. 걱정은 금세 되살아나고 있었다. 애탄 마음을 뒤로하고 최대한 공손하게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잠에서 깬 목소리로 지니는 다음날 새벽인 줄 알았다고 미안하다면서 지금 당장 가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지니의 집은 캠퍼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가 깊은 잠에 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몇 분 뒤 지니의 차가 보였고 다행히 늦지 않게 버펄로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미리 준비한 감사의 선물을 드리고 차에서 내렸다. 지니는 내 선물에 감동하며 차에서 직접 나와 손수 내 짐을 내려주고 따뜻한 포옹을 건넸다.

Be safe and have a nice break.

지니에게서 우리 할머니에게서 나는 비슷한 체취를 맡으며 나는 게이트로 향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언젠가 집에 초대받았을 때 그녀의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How cute. Thanks. I'm glad I could help you out.'

'귀엽구나. 고마워. 나도 너를 도와줄 수 있어 기뻐.'

도와줄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전하는 지니에게서 나는 미국의 정을 느꼈다. 처음 느낀 감정은 아니었다. 내가 혼자서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지니와 같은 사람들이 건넨 따뜻한 환대에 있다. 나를 부드럽게 맞이한 수많은 얼굴들. 낯선 이를 향한 호기심 가득 찬 눈동자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표정들, 여행을 복기하는 나는 다시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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