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존립할 수 있는 관계
나는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믿는다. 아니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수십 번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깊은 관계를 같이하는 사람은 몇 안 되는 것처럼 사람이 누군가에게 끌려 그 사람과 인연을 유지하는 그 사이에는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고 믿는다. 요즘 들어 일시적인 만남과 비즈니스적인 관계가 많아지다 보니 자기가 씌운 페르소나라는 덫에 걸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난 모든 관계는 give and take라고 본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잰다는 말은 아닌데 그냥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가 이상적이다. 그게 연인이든 친구든,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든.
‘끼리끼리 만난다’ , 유유상종의 다른 표현이자 가장 그 본연을 잘 드러낸 말이다. 흔히 개인에게 이상형을 물어보면 다들 각자의 특별한 기준을 말한다. 어때야 되고, 뭐해야 하며 등등 그런데 정작 본인은 어떤 모습인가 라고 물으면 다들 아무 말 못 한다. 자신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상대가 그러기를 바라는 건 너무 태만한 자세 아닌가?
멋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면, 본인이 먼저 멋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 그게 진부하지만 이치다. 자기 자신이 노니고 있는 pool 자체를 키우다 보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매우 간단하다. 내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이 어느 직종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면, 본인이 그 직업을 종사하는 사람이 되면 만날 확률은 남들보다 확실히 높아진다. 사람은 또 비슷한 사람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동물이기에, 자신의 인생이 유영하고 있는 그 pool이 윤택해지면 그에 맞는 인간은 마치 영화처럼 등장하길 마련이다.
나는 모든 관계가 톱니바퀴와 같다고 믿는다.
상대가 돌아가야 돌고 있는 나도 같이 맞물릴 수 있다.
어느 한쪽이 멈춰 있으면 그 관계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도 돌고 저쪽도 돌고 있어야 큰 시너지가 나오는 것이다.
더 나은 인연, 사람을 통해서 배울 수 있고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관계는 누구나 바라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처럼 상대도 그걸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내가 먼저 나로서 존립할 수 있어야 상대도 나를 보고, 나도 상대가 보이는 게 아닐까. 남에게 바라는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투영시켜 보는 게 어떨까? 난 잘하고 있는가? 내가 열심히 가꿔온 나의 정원은 어떠한가. 그렇게 스스로를 가꾸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나와 닮은 인연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적으로 서로는 알아보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