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왜 오는가

by 나디아



꿈 많은 19살, 세상은 나한테 대학을 가라고 했다. 나도 어느 정도 대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 말에 한 번도 반기를 든 적이 없다. 공부하라고 해서 했고, 능력을 갖추라고 해서 했다. 꿈이 있어서 따랐고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없다.



주위 사람들은 대학 가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일단 가라고. 사회적 풍토가 그랬기에 나도 대학만 오면 내 꿈을 찾고 행복만 할 줄 알았다. 근데 여기서 내가 놓쳤던 것이 한 가지 있다. '왜' 난 대학을 가야 하는가. 단순히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남들이 다 가니까. 이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본질적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건,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는, 소위 대학을 가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라는 식의 생각도 있었지만. 한 번도 이 세상은 그런 생각을 할 여유와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냥 입 닫고 순응하라는 주입식 교육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어쩌면 시간 낭비였을 지도 모른다.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대학에서 여러분의 꿈이 실현될 것입니다. "


라는 식의 응원들. 마치 대학을 유토피아처럼 표상하는 어른들의 현혹스러운 말. 대학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차마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마치 상상의 나라 놀이공원에 오듯이 대학만 오면 내 꿈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학은 현실이다. 이 말은 즉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12+년 동안 우리는 맹목적으로 대학이라는 기관을 추종해왔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대학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장밋빛 안경에 빠져 있는 사이 많은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요즘 들어 대학 4년의 시간 동안 그리고 대학에 지불하는 그 돈으로 얼마나 더 멋진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 와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들었고, 나 또한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보기에는 달콤해 보이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그런 실속 없는 말, 그런 응원 따윈 해주고 싶지 않았다. 현실은 현실이다. 대학은 대학이고, 그 목적을 당신 안에서 찾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대신 찾아줄 수 없다. 한편으론 안타깝다. 그 긴 12년의 시간 동안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우리의 상황, 그리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이 세상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과 선택을 맡겨놓았다.



언제부턴가 대학은 컨테이너 벨트로 둘러싸인 공장처럼 변해갔다. 취업을 목적으로 대학에 오는 것이 당연해진 요즘 대학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도 흔들리고 있다. 학문의 장을 기대하고 대학에 왔지만 보이는 현실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세상이 굴리기 편한 도구를 생산하는 곳에 불과하다.





이 글은 대학의 불필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자 왔기에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학문을 선택하는 것도 눈치 보이는 요즘. 나도 숱하게 흔들렸지만 그래도 굳게 믿고 가는 건 내가 생각하는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에서 학문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시간이 나한텐 정말 소중하다. 그래서 난 대학을 다닌다.





고등학생 때는 확실히 대답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도 이제야 답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구체적인 답을 당장 찾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은 자신에게 물어봤으면 좋겠다. 세상이 내린 결론에 무조건 동조했던 건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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