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그는 누구인가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 그를 기억하며

by 나디아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전시회가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화려한 색채에 목말랐던 난 한달음에 그곳으로 갔다. "모든 예술가의 예술 작품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예술가와 감상자의 암묵적인 약속이다"라는 나의 신념으로 그의 작품을 만나기 전 먼저 앤디 워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돈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는 그의 말이었다. 이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6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단면을 그대로 포착했다. 그걸 통해서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어쩌면 자본주의를 그대로 답습하는 자신을 통해 그 이면을 폭로하고 싶었을까.






워홀은 드러냄과 가림을 가장 잘 표현했던 예술가였다. 그는 대중에게 보일 무한한 캐릭터를 형성했는데, 이는 워홀이 자신의 페르소나를 형성하는데 엄청 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가려진 반은 워홀 자신이 아직까지 완전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과 동시에 어쩌면 대중에게 진짜 워홀의 반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던 워홀의 <The Shadow>라는 작품이다. 빛의 밝기가 한없이 밝아지다가 일정한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대상의 실체보다 그림자가 더 선명해진다. 이는 상업 예술가로서 자신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시도와 맞물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그리고 믿고 있는 워홀이 진정한 실재인가하는 물음에 빠지게 한다. 그의 자화상을 볼 때면 "내가 보는 것이 진짜 앤디 워홀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워홀은 끊임없는 자의식 속에서 고민했다고 한다. 워홀 자신 또한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시원한 답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그의 작품은 대개 형상이 뒤집혀 있거나 실체가 불분명해 보이는데, 여기서 우리는 불안한 아직 완고히 굳히지 않은 그의 여러 자아를 엿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성장하면서 여러 자아를 하나로 통합해가는 과정을 거친다. 워홀도 그런 과정 속에서 흔들리는 수많은 자아와 마주쳤을 것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했던 것 같다.





총격 사건 이후로 죽음을 경험한 그는 "나는 죽음을 경험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두렵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건 후 그가 남긴 자화상은 다소 경직되어 있고 가운데 큰 두상은 참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인생을 하나의 성장 서사라고 본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죽음에 내딛는 존재들이다. 죽음 앞에서 그는 어떤 사유를 했을까 생각해본다.





앤디 워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저와 제 페인팅,
영화에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됩니다.
그 이면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난 모든 예술 작품에는 예술가가 숨겨놓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비틀어보거나 하물며 시대를 비판하거나하는 그런 의도 말이다.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감상자가 이끌어낼 때 예술의 진정한 가치가 발현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워홀과 그의 작품도 스스로를 상품으로 전락해버림으로써 오히려 감상자가 이를 비틀어보게 하는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의 이면을 폭로하고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 바라봐달라는 그의 말이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또 다른 차원에서 확장시켜주었다.



그는 예술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자본과 시장의 원리이니까. 오히려 예술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 그의 생각을 우린 감상자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예술가는 항상 무언가를 비판해야 하고 예술 작품에는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 그냥 있는 그대로를 느끼면 되는 것이다.



워홀은 동시대를 살아갔던 그리고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다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고뇌했던 사람이다. 예술가이기 전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 바라봐달라는 그의 말처럼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 앤디 워홀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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