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낭만을 품고 살아가는 일

by 나디아

물질이 모든 것을 지배한 세상에서

순수한 사랑은 정말 가능한 것일까?


등급을 매기는 게 일상인 결혼 시장 속에서

조건 없는 만남은 마른 샘물에 가깝다.


그날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출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고, 지옥철에 몸을 맡기는 건 더더욱 쉽지 않았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그게 (어떻게 지칭해야 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니 그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


신화 속에만 있을 것 같은 작고 흐물한 존재를 만나는 건 꽤나 기이한 일이다.


어린아이라면 처음 보는 존재에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갈 테지만, 내게 그런 여유는 없어진 지 오래다. 출근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오래가지 못해 난 그에게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왜 계속 따라오는 거야?”




대답이 없었다. 그저 날 주시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얼떨결에 기이한 생명체와 회사에 도착한 난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강하게 타일렀다.




“저기 내가 시간이 없거든. 여기서부턴 날 따라오면 안 돼. Don’t follow me, okay?”




뛰어가려는 그 순간 옷깃을 스치는 미세한 떨림이 날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에 그렁그렁한 눈, 나도 모르게 동요되고 말았다.



이렇게 강한 끌림을 느낀 게 얼마 만인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알다 가도 모를 인간관계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하물며 사랑은 심연 속에서 숨을 헐떡이는 생각에 서성이기도 두려운 것이었다.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갖기 위해 먼저 해체해야 하는, 원자 단위로 조각조각 나누어 등급을 매기는 사랑은 회의감마저 들게 했다.


미지의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 일, 이것이야 말로 낭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진정 순수한 사랑이 아닐까?


이런 물음은 어느새 세속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외계인과 함께 실험적인 방송을 만들면 엄청 흥행하지 않을까?


시시각각 변하는 내 오묘한 생각들을 마치 읽은 것처럼 그 애는 잡아끌던 옷을 놓고 더 이상 날 따라오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오늘 출근길을 돌이켜보았다.


성가시긴 했지만 새로웠던 것은 분명했다. 어느새 난 모든 일에 둔감해졌고, 새로움에 흥미를 가질 여유 또한 스스로 차단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무언가에 크게 동요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안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내게 새로운 떨림을 선물한 존재에게 검은 그림자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너도 우리 세상이 궁금하지 않아?”



어느새 내 눈은 반짝거렸고 이에 화답하듯 그의 눈망울 역시 호수처럼 잔잔하게 빛났다.


나와 그 미지의 존재는 손을 잡고 회사로 들어갔다.

두 사람 눈에 비친 세상은 미세한 떨림을 지닌 채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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