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새로운 시작

by 서우

제게 단 한 번뿐인 신혼여행은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결혼식 다음 날에야 출발, 도착한 신혼여행지에서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올렸는데, 시댁에서 결혼식 비용이라기에는 너무도 적은 금액을 건네고는 다른 말이 없었다며 난감해하시기에 남편에게 어찌 된 사정인지 물었는데 그로 인한 싸움이 여행 내내 계속되었기 때문이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되었는데, 변기시트를 올려두고는 왜 내려놓지 않는 것인지, 변기 주변에 흘려놓은 것들은 왜 치우지 않는 것인지, 면도용 크림과 면도기를 포함, 사용한 물건들은 왜 제자리에 두지 않는 것인지, 자기 전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달라 부탁했는데 왜 씻지 않는 것인지, 아이의 울음소리는 왜 그에게만 들리지 않는 것인지, 자신은 하지도 않는 시부모님께 대한 효도를 왜 내게만 강요하는 것인지, 실패하는 사업은 왜 계속하는 것인지 등등 큰소리내고 싸우기 싫어하고 말았으니 유지되었을 뿐, 어찌 보면 별 일 아닌듯한 사소한 불편과 짜증이 반복되면서 결혼 자체가 고통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않으면 계속 어긋날 것 같아 이유를 물으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답할 뿐, 변화나 개선의 여지가 없었고 그렇다고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 내 싸울 수도, 그럴 기력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어린데 헤어질 수도 없으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억지웃음을 장착한 채 침묵으로 견뎌왔던 이십 오 년의 세월 동안 그 사림으로 인해 생긴 채무를 상환해야 했고, 그가 매일 마신 술로 인한 난폭함을 감수해야 했으며, 나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왔던 것이죠. 이유는 단 하나, 이혼 가정 아이들이 군대에 가면 관심병사로 분류되어 힘든 군생활을 하게 된다던데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군복무를 시작하고서야 알게 된 것인데 군복무 시 이혼자녀라 해서 따로 관리되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가정 경제를 굳이 남자가 책임져야 한다 생각지는 않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을 지켜내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생각했지만, 전 남편이 사업실패를 반복할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치는 것 같아 속상했고 음주로 인한 폭행까지 심해지자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맘이 피폐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참아내자, 견뎌내야 한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고 힘겨워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되었고, 나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이들도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 결론 내리고 이혼에 이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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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혼을 말했을 때는 생각해 보자며 미루던 그가, 석 달이 지났을 즈음에야 동의했는데, 우연인지 의도적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내 납부 중 이듼 그 명의의 세금과 휴대폰 요금, 과태료를 포함한 체납금과 사업실패로 인한 그 명의의 채무가 상환 완료된 날이었습니다. 수입이 없었기여 생활비 한 번 낸 적 없던 그가 급여를 받기 시작한 후 5개월 정도는 자신의 채무상환에 필요한 극히 일부나마 보내주었으나 그조차 얼마 되지 않아 끊긴 뒤였기에 위자료를 받아야 한다는 권유가 있었음에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혼까지 시간이 더 소요되더라도 향후 아이들과 관련된 책임과 경제적 지원 관련하여 세밀한 논의와 법적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것은 사실이나 헤어지는 과정 속, 서로의 바닥만 보이고 실질적 도움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했기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건 없이 이혼에 합의했습니다.

관할법원으로 가서 상호 간 이혼에 합의했음을 확인받고 헤어진 뒤 구청예 가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관련한 모든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었을 때, 수없이 이혼이라는 단어를 품고, 묻어왔던 가슴속 깊은 곳은 후련함보다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기 위해 법원으로 향하던 날, 그가 너무나 밉고 원망스러웠음에도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건강을 염려하여 코로나검사 키트와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마스크까지 챙겨 건네주었으니 나 자신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어 울고 웃기를 반복하며 아까운 세월을 흘려보냈죠. 게다가, 새로운 삶을 축복받아야 했을 첫날 아침, 하필이면 왜 그때, 그 순간에 그날의 일들이 떠오른 것인지, 결혼을 코앞에 두고 용기 내어 파혼하자 말했으나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던 그를 외면하지 못했던 나를, 조금 더 빨리 이혼을 결심하지 못했던 나의 우유부단함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원망하느라 무거운 먹먹함으로 메워진 가슴은 어느 날보다 행복하고 희망으로 가득 찰 거라 예상했던 이혼 첫날의 아침을 눈물로 채워버렸습니다. 잘했다고, 모든 일이 다 잘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던 엄마의 전화가 없었더라면 무거운 안개 속에 갇힌 듯 막막하고 답답했던 감정을 벗어내기 어려웠을 것 잇니다.


'결혼'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철저히 분리된 독립 개체인 두 사람이 법적, 심리적으로 하나 되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개체로 승화되는 시작점입니다. 반면, 한 사랑의 끝이라 말할 수 있는 '이혼은 결혼으로 묶여있던 두 사람이 함께하는 기간 동안 공유했던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을 비롯, 작은 상처 하나까지 끌어안고서 다시 독립된 개체로 분리되어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마치 이혼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거나 삶이 망가질 거라 생각지 말기를, 그저 사랑하나 가 끝난 것일 뿐, 그대의 사랑도, 그대의 삶도 각자 지닌 빛을 발하며 찬란히 살아갈 터이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아팠을지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무리 애써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았던 고민을 끝내고 도무지 알아낼 수 없을 것만 같던 정답을 찾아내어 수없이 많은 결심을 반복하고 매일 조금씬 변화하며 나아간 끝에야 이혼이라는 출발점에 서게 된 당신의 인내와 노력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이혼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제대로 살피거나 달래주지 못하고 지나쳤을 설움과 슬픔이 이혼과 동시에 사라질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전보다 가볍고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다만, 외롭다는 이유로 서둘러 다른 누군가를 찾아 의지하려들지 말기를, 쉽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거나 감정을 공유하며 빠르게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으로 사랑의 판타지를 이뤼낸 냥 착각하지 말기를,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처럼 매일 새로운 인연을 찾아다니고 방황하다 기어이 누군가가 예비해 놓은 함정위 빠져 몸부림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동안은 이혼 후 달라진 환경과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다시 혼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두렵고 외롭겠죠,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묻고 답하며 그 소리에 집중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여유는 치열하고 진중히 살아왔던 이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일 테니 누구의 무엇이 아닌 나 자신으로 행복하게 살아주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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