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 방법

by 여운

지도 없이 길을 찾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꽤 비슷해 보이는 두 가지 방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도움의 손길이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가 먼저 부탁하거나.



첫 번째 에피소드는

홍콩에 홀로 여행갔을 때의 일이다.

중국어도 할 줄 모르고 영어도 내뱉기를 부끄러워하는 타입이라

정말 필요한 말(화장실이 어디예요, 얼마예요 등) 이외에는

입을 꾹 닫고 여행만 즐겼다.


그러던 중, 길을 잃어버렸다.

덩라우 벽화를 찾으려고 소호 거리를 뱅뱅 돌았는데

같은 길만 계속 맴도는 느낌이었다.


지도를 열어봐도 자꾸만 엉뚱한 길을 알려주고,

육교 위에서 몇 분을 하릴없이 서성거렸다.


그 때 한 푸른 눈의 할아버지가

내 옆을 지나가다 멈춰서고 물었다.


"Are you lost?"


그렇게 두려워하던 영어였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그 말이 너무 반갑게 들렸다.


"예스! 아임.. 아임 로스트."

할아버지는 어딜 가는지 묻고는 여기서 위로 올라갔다가

오른쪽으로 꺽어서 쭉 가면 된다고 자세히 말해주었다.


나는 몇 번이나 땡큐를 외치며 고개를 숙였고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 가본 곳에는

내가 그토록 찾던 벽화와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거기서도 내가 나온 사진을 너무 남기고 싶은데,

당시의 나는 부끄러움이 참 많았다.

30분을 서성거리다 한 외국인 커플이 사진을 먼저 요청했고

엉겁결에 나도 찍어주겠다는 말에

수줍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 때의 사진을 지금 다시 보면

어색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내가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절대 잘 나온 사진이 아닌데

어쩐지 그 사진에 하트를 눌러 놓았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그로부터 1년 뒤,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 나는 일본어를 잘하지 못했었다.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를 일본어로 배우긴 했지만

책상 앞에서 배운 공부여서 그런지 회화는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일본 문화와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고

그들과 대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매일 보는 일본 드라마의 사람들처럼 나도

저 무리에 섞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외국에 유심이나 와이파이 대여도 하지 않고 그냥 갔다.

길을 못 찾겠으니 지나가는 일본 사람에게 물어보기에

딱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도착한 나고야에서 나는 관광지에 갈 때마다

최소 세 사람에게는 물어보며 조금씩 이동했다.


여행의 마지막날 밤, 시내로 이동해 쇼핑을 하고 싶은데

길을 알지 못하니 또 누군가에게 물어야했다.

마침 지하철 개찰구애서 나오는 한 아저씨가 보였다.

나는 용기내 다가가 시내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일본어로 설명해주던 아저씨는 내가 못 알아듣는

눈치를 보이자 같이 가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즘 시대에는 꽤 무서워보이는

행동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일본 사람들의 친절함에 반했고

같이 이동하면서 뭐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아저씨의

일본어가 신기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냐고

나를 나무라기도 한다.

하지만 난 아마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지난 여행으로 성장한 나는

낯선 환경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 일들은 20대 초반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나는 지도도 곧잘 볼 줄 알고 사진도 스스럼없이 부탁하며,

유심 없이 해외여행에 나서는 대책 없는 짓은 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도 이따금씩, 그 시절 젊은 날의 수줍음 많았던 홍콩에서의 나와

패기 있게 길도 모른채 나고야 거리를 활보하던 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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