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훼손

누구에게나 시절인연이 있다.

by 여운

어느 저녁 친구와 밥을 먹다가

지나간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와 친구는 꽤 비슷한 성격으로,

좁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한다.

이 말인즉 주변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내향적인 성격이어야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며 우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 친구와 나 사이에

딱 하나 다른 것이 있었다.


우리는 예전에 친했던 사람이라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여기까진 똑같다.

친구와 나의 차이는 연락을 하지 않는 '이유'였다.


친구는 단지 어색하니까.

보고 싶고, 궁금하긴 하지만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싫다고 했다.

보통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 멀어진 누군가가 정말 보고 싶다면

스스럼없이 연락하는 타입이었다.

내향적일지라도 내 사람 한테만큼은 열려있기 때문에

딱히 그게 어렵거나 싫지 않았다.


그렇게 한번 해본 적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나 바뀌어 있는 타인의 모습을 봤을 때

위화감이 들면서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그 사람의 바뀐 모습이 내겐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 그랬던 것 같다.


분명 3년 전의 그는 이런 모습이었고,

이런 성격이었으며 이런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변화점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설명하자면, 내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그 사람의

모습이 훼손된 느낌이었다. 워딩이 조금 셌나.

어쨌든 난 그 이후로 시절이 지나간 인연은

구태여 만나려 하지 않고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남겨둔다.

일종의 강박일자도 모르겠다.


간혹 그렇지 않고 거의 바뀐 게 없이

그대로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땐 변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똑같이 그 사람 기억을 훼손 시키지 않고

그가 알고 있던 예전의 나로,

보존시켜두고 싶다고 해야 될까.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어가는 세상 속에서

추억 속에 있는, 그때 내 사람이었던 그들 만큼은

멈춰있는 사진처럼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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