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과 통닭

by 여운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칭찬에 인색했다. 나는 학교에서 하는 글짓기 대회에서 곧잘 수상하곤 했다.

빳빳한 상장을 받을 때면 혹여나 뭐가 묻을라, 구겨질새라 L자 화일에 넣고 집까지 고이 모셔갔다.


저녁에 엄마가 돌아오시면 들뜬 마음으로 상장을 짠-하고 내밀었다.

잘했다는 말을 들으리라는 기대감을 한껏 안고.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내 기대와 빗겨갔다. 이번엔 우수상이네. 최우수상은 다른 애가 받았어?

일단 우리 반에서는 없었으니 다른 반에 있을 것이었다. 나는 모르겠다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했다.

상 받아왔으니까 오늘 저녁은 통닭이다! 엄마는 그 말과 함께 통닭집에 전화를 걸었다. 칭찬은 없었다.


닭다리와 눈칫밥을 함께 먹으며 물었다. 엄마 나 잘했지...?

그럼 잘했지~ 다음에는 더 잘해오면 통닭 또 먹는거야 알았지?

그렇게 나에게 상장=통닭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잘했다는 말 한 마디면 되었다. 굳이 통닭은 먹지 않아도 되었다.

집에 있는 비엔나소시지를 구워먹든, 반찬통의 장조림을 먹든.

내가 바라던 건 '잘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잘한 일엔 상이, 잘못한 일엔 벌이 따라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던 마음이 점점 무뎌져서 이제 나도 상장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중학생 때 받은 상만 해도 몇십개는 될터이니, 고등학생이 되어가며

나는 어느새 통닭에 물려버렸고 이따금씩 피자, 햄버거 등으로 소소한 베리에이션을 주기도 했다.


엄마는 확실히, 나와 많이 달랐다. 요즘 말로 하면 극T인 엄마와 F인 나였기에 이제 그 다름이 이해되긴 한다.

그 시절의 나는 그대로 자라, 칭찬받는 것을 어색해하면서도 늘 속으로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 퍽, 아이러니했다.




그러다 얼마 전, 형제들과 부모님 사이에 갈등이 있어 두 시간 동안 진지한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다.

그때 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가 저희한테 잘했다고 하신 적 있어요?

잘못한 건 항상 그 일의 배로 혼내고, 잘한 건 한번도 칭찬해 주신 적 없잖아요.


너도 느끼고 있었구나. 동생이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처음 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이렇게 오래 남고,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을 성인이 다 된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래 다 내 잘못이구나, 내 잘못이야. 잘잘못을 따지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이야기는 도돌이표마냥 계속 빙빙 돌아 상처받은 기억들을 자꾸만 헤집어 놓는데,

그게 너무 아파서 얘기가 길어지는 동안 계속 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참 공교롭게도 지난밤 먹다 남은 치킨이 식탁 위에 놓여진 것이 보였다. 언니가 사온 것이었을거다.

치킨은 우리가 이제 돈을 주고 몇 번이든, 삼시 세끼도 먹을 수 있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고칠 수가 없다.

귀를 울리는 고성들 사이로 수많은 상장들과 통닭을 먹은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지금이라도 칭찬해주세요. 전 그거면 돼요.

라는 말은 울음에 묻혀 결국 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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