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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언젠가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튕겨나갈 수 있다.

by 이와테현와규

롯데자이언츠 팬, 즉 부산갈매기인 나는 요즘 엘지와 케이티의 한국시리즈(KS) 경기와 관련된 소식을 듣고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생각이 가끔 든다. 나름 야구도시(구도)라고 불리는 롯데는 6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조차도 못했는데 쟤들은 마지막 관문인 한국시리즈를 하고 있구나.(가을야구, 즉 포스트 시즌은 정규 시즌이 끝나는 시점에서 10개의 야구구단 중 5위 안에 든 팀이 승부를 보기 위한 야구 시즌이고, 한국 시리즈는 정규시즌에서 1위를 한 팀과 포스트시즌에 진출 성공한 2,3,4,5등 팀이 여러 번의 경기를 거쳐 올라온 팀이 하는 최종 경기이다. 이럴 때는 차트나 마인드맵이 있으면 설명이 쉬울 텐데 말이다. 근데 야구 시즌을 시즌 말고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말이 뭐가 있을까?)

한국야구의 역사가 생각보다 길다 보니, 그리고 엘지는 우리 롯데와 삼성과 더불어 야구의 시작 순간부터 있던 팀이기에 어르신 팬층이 꽤나 두터운 편이다. 그런 어르신들이 아침 일찍 경기장을 방문했지만 온라인 티켓팅으로 인한 매진으로 인해 직관을 하지 못하는 모습에 대한 글이 SNS에 올라오는 걸 가끔 본다. 그런 어르신들은 결국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근처의 식당에서 중계로 야구를 시청하신다는 댓글도 봤다.


이러한 글들을 보고 나서 문득 몇 주 전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주말에 가끔 노트북을 들고 가서 가끔 일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시키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바리스타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는 것을 느껴 잠시 계산대 쪽을 바라봤더니 허리가 구부정한 상태의 매우 왜소한 할머니 한 분과 실랑이를 하는 모습이었다. 상황의 핵심만 놓고 보면 할머니는 '현금 사용이 불가능한 스타벅스'에서 잔돈으로 커피를 구매하고 싶다고 요청을 지속적으로 했고 직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었다.(몇 년 전, 스타벅스에서 만원 단위의 충전은 가능하다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된다고 하는 것을 본 나는 순간 내가 도태되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 할머니는 끝까지 현금으로 결제할 것이라고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내밀었고 포기한 직원은 결국 주문을 받았다. 그러고 그 할머니는 앉아서 쉴 줄 알았더니 금방 나가셨고 매장 앞 길에 앉아 계셨다. 비싼 커피 힘들게 구매하셨으면 매장 안에 계시지 왜 저기 계시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 할머니는 자존심도 안 상하시나? 나라면 바로 나왔다."


"엄마, 직원 입장에서는 지침대로 할 수밖에 없다. 괜히 현금결제 해줬다가 다른 손님들이 보고 '왜 저 사람은 해주고 난 안 해줘요?'라는 문의를 하거나 왜 원칙대로 안 하냐고 직원끼리 불화가 생기거나 하면 매우 귀찮아져. 문제 생기면 다 직원 탓이 되는 게 직장생활이라고요."


"현금 결제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근데 참 노인네들 살기가 갈수록 힘들어."


그렇게 작년 8월경에 겪었던 엄마의 속상한 경험을 알려주셨다.

엄마가 좋아해서 가끔 드시는 햄버거가 있다.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인데,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엄마는 전에 살던 동네에 가실 때 가끔 햄버거 생각이 나면 그 매장에서 구매를 하신다. 엄마는 나이가 아니라 연세라고 할 만큼 옛날 분이시고, 스마트폰도 구매하신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카톡을 읽으실 수 있을 정도로 신문물에 어려움을 겪으신다. 시간을 할애해서 배우면 편하겠지만 집안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아빠와 나를 위한 양질의 식사를 위해 다듬어져 판매하는 채소조차도 한 번 더 손질을 하시고, 좋은 것 먹여야 한다고 직접 장을 담그시고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 발품 팔아 시장을 돌아다니시는 분이다. 아직도 손빨래를 하시는 게 좋다며 가족들이 말려도 고전적인 방법을 고수하시는 엄마는 항상 체력이 방전되어 있다 보니 이런 엄마를 붙잡고 신문물을 알려드리기란 사실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실 엄마가 자주 가는 곳이 아니면 아빠나 내가 같이 간다. 햄버거도 아빠가 가끔씩 집 근처의 롯데리아에서 키오스크 주문뿐만 아니라 현금 결제 시 사람이 직접 주문받는 매장에서 사 오신다. 그런데, 엄마가 이사 전에는 그렇게 자주 갔던 그 매장을 그날따라 출출하고 그것이 드시고 싶어서 오랜만에 방문한 엄마가 주문을 하려고 직원에게 다가갔다.


"옆에 기계에서 주문하셔야 해요."


사실 내가 그 상황에 직접 있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성격상 더 이상의 도움을 요청하면 민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고, 도움을 요청하면 직원들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어 싫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며 먹는 것 때문에 구차하게 뭘 더 이상 물어보기도 싫으셨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속이 상했다. 마음 같아서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본사에 제기하고 싶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도 롯데리아가 있는데 그곳에는 현금결제를 하는 경우는 직원에게 결제를 해도 된다. 또한 맨 처음에 직원이 먼저 물어본다.


"현금결제 하시면 여기서 도와드릴게요. 카드 결제는 저기 기계를 이용하시면 빠릅니다."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모르는 아빠도 집 근처의 매장에서 그렇게 사서 오신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그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직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정말로 속상했고 여전히 속상하다.


마트에 가도 주문기계인 키오스크 앞에 항상 직원 한 명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곳에도 계산과 진단서 발급을 위한 키오스크가 있는데 그 앞에 직원이 있다. 그래서 꽤 고연령인 분들도 이용하시는 모습을 생각보다는 자주 본다.


적어도 엄마의 기분을 거의 99% 이해한다.

조금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한 날은 내가 면역치료 주사를 맞았는데 항상 주사 맞기 1-2시간 전에 알레르기약, 즉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그러면 특별한 부작용이 없다. 실제로 약을 먹은 상태로 주사를 맞았을 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한 날은 농도를 높인 주사를 맞은 탓이었을까? 항히스타민제를 먹었음에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전신에 열감이 느껴졌으며 무기력해지고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주사 맞은 뒤 바로 스테로이드 제제의 약을 처방받은 상태라 받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나의 심각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줄이 길었던 원내약국에서는 준비된 약을 받을 수 없었고 너무 힘들었던 탓에 부탁을 해서 다른 곳에서 약을 수령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이곳에서 꽤나 민폐이구나, 매주 맞아야 하는 주사를 맞으러 갈 때도 하필 바쁜 시간에만 가고. 얼마나 내가 귀찮을까?' 이후 나는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괜히 민폐가 될까 봐 못 가고 있다. 내 돈 내고 내가 받는 진료인데, 직원이라 이런 생각이 더 드는 걸까? 그 과정에서 나는 몰랐던 직원의 혜택이 알게 모르게 많이 있었을까 봐 그리고 그것들이 민폐를 끼치는 일이었을 까봐 더 겁이 나기도 한다.

엄마 또한 이런 느낌의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장비를 이용할 줄 모르는 나는 민폐이고 난 더 이상 이곳에 올 수 없겠구나.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에 엄마가 겪은 일들을 듣고 엄마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해 보니 정말 너무나도 속상하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의 키오스크는 나도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르신들은 오죽하실까? 그런데 가끔은 나도 도태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신조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거나, 기계들의 진화를 빨리 따라가지 못해 멍하기도 하고. 세상이 빨리 발전하고 우리나라는 '더 빨리, 더 더 빨리'를 요구한다. 그 빨리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노화가 가속화되어 적응력이 떨어지는 노인뿐만이 아니다. 너무나도 잘 적응을 하는 젊은 사람들은 그것을 답답해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아직은 많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사람을 응대하는 곳에서 여러 직원이 근무를 하는데 한 직원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한 명만 응대하다 보면 뒤의 대기자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직원 입장에서도 업무에 대한 압박 때문에 마냥 편하게 안내하기도 힘들다. 또한 그런 대기 시간들이 실적과 연결되는 곳은 그런 도움조차 쉽게 주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좋은 사람들이 많은 좋은 세상이라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노인들을 위한 현장구매용 좌석을 따로 마련한다던가 노인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을 개선한 키오스크를 만든다던가 아니면 촉박하지 않게 인원을 늘린다던가. 지금 이런 과정들이 주체하지 못하는 변화의 속도로 인한 시행착오라면 미래에는 모두가 살기 편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더욱더 빠름에 가속도가 자꾸 붙어 돌아가는 세상이 유지된다면 나도 언젠가는 그 좋아하는 커피조차 마시기 힘든 날이 오겠지?


유강남.jpg 내년에는 우리도 꼭 가을야구 구경할 수 있기를 바라요. KBO의 최애 유강남선수 롯데에 와서 너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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