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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Nov 25. 2023

굳이 굳이 낭만 찾기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은 LA

1.

 아침 일찍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내가 머물던 민박집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당이 있는데(물론 나는 사 먹어보진 않았다. 다만 그곳은 영업시간에 항상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차를 끌고 와서 포장해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추측을 할 뿐이다.) 그 가게 앞 가로수를 만지작거리는 한 흑인여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먹을 것이 좀 있니?"

(참고로 완벽한 영어문장이 생각나진 않는다.)


너무나 황당한 질문이었는데 나무를 후벼 파면서 먹을 것이 있냐는 질문을 하니 가방에 있던 민트맛 사탕이라도 주고 그 자리를 얼른 떠야겠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꺼냈다. 그 사탕을 본 여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난 배가 고파. 먹을 게 없다면 돈(달러)이라도 줘."


배가 고픈 게 맞는 건가? 사탕은 안되고 돈을 달라니. 눈앞에 있는 맥도널드를 가리키며 저기서 먹을 것을 사달라고 한다. 그 집요한 사람에게 난 외국인이라 돈이 없다고 말을 하고 사탕이라도 달라는 자에게 그것을 준 뒤 얼른 자리를 피했다.



2.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던 그날 저녁, 자잘한 빨래거리를 들고 동전 빨래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전 사이판 여행 때 빨래방을 이용했던 적이 있는데 이곳도 같은 미국이라 그런지 외형도 구조도 비슷하여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빨래방 바로 옆에 주유소와 스낵바가 있었는데 그곳에 서있던 한 흑인남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안녕, 혹시 나에게 1달러만 기부할 수 있겠니?"


다행히 지갑은 빨래 밑에 숨겨져 있었고 후줄근한 모습이어서 그런지 외국인이라 현금이 없다는 나를 쓱 훑더니 곧바로 포기했다. 기름을 채울 돈이 없던 건지 아니면 그 옆 스낵바에서 먹을 것을 사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돈 달라는 사람이 왜 이래 많았는지 참.



생각해 보니 여행 3일 차 때 더 심각한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한인타운을 가로질러 다저스스타디움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잠시 마트를 들러 커피를 사들고 버스를 탔고 지하철 환승을 위해 내렸던 정류장 주변에 펼쳐진 잔디밭에는 노숙자들이 떼 지어 누워 있었다.(참고로 노숙자들은 다인종이었다. 당연한 건지 신기한 건지 동양인은 없었다.) 내리긴 해야 했던 나는 눈앞에 온갖 약을 주섬주섬 싸매고 있는 흑인의 모습에 얼어붙었고 못 본 체 길을 건넜다. 건너고 나니 인도에는 노점상이 즐비해 있었고 그곳에는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 무언가를 사라고 강요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사기를 들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뻔했지만 태연한 척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처음 엘에이 여행을 후회하게 만드는 장면까지 보였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담배 피우는 사람과 횡설수설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며 울고 싶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러 이곳에 온 걸까. 다행히도 이후에는 이보다 심각한 상황을 보지는 않았다마는.


엘에이는 나에게 나름 희망을 주는 도시라는 생각에 여행지로 선택을 했었다. 일몰이 아름다운 샌타모니카해변, 그 위로 멜로즈거리와 할리우드, 성공한 사람들의 동네 베버리힐즈, 희망의 상징 다저스스타디움(IMF시절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던 박찬호선수의 당시 소속), 야경이 아름다운 그리피스천문대, 그리고 결국 못 갔지만 오타니쇼헤이 소속의 애너하임 에인절스까지. 나태해진 나의 삶에 조금 힘을 불어넣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선택한 여행지는 내가 상상했던 그곳이 아니었다. 무임승차가 당연하고 집 없는 사람들이 항상 어딘가에 누워 있으며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선글라스 때문인지 본인을 본다 착각하고 다가온 거의 헐벗은 사람도 있었다. (진짜 길을 찾고 있었고 바로 방향을 틀었지만) 심지어 한인타운 입구 쪽이 가장 위험했다.

생각보다 반짝이는 동네의 범위는 좁았다.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하얗고 깨끗하며 정돈된 예쁜 동네가 있지만 현실 엘에이 동네들 덕분일까 예쁜 동네가 더 빛나보인 것은 사실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무사히 졸업하고 취업해서 지금의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위생적이고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지금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또한 내 직업이 이곳에서는 어떤 동네까지 입성할 수 있게 해 줄까?

적잖이 현타를 느낀 여행이었다. 

노숙자 거리, 심지어 법원 앞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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