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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Jan 06. 2024

굳이 굳이 낭만 찾기

LA여행 그리고 최소한의 선의

"뉴스나 유튜브에서만 있는 건 줄 알았어요. 실제로 주사기를 들고 비틀거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심지어..."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 쪽에서 내린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는 담배인지 대마인지 모르는 하얀 물체들을 보자기에 싸맸다 풀었다 하는 금발의 노숙자와 그 주변으로 비틀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뒤에 펼쳐진 잔디밭에는 (일광욕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마약에 취해 드러누운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환승을 하기 위해 길을 건너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노점상이 즐비한 인도를 걸어가다 보면 1cc짜리 얇은 주사기를 한 손에 들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사람도 멀지 않은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나를 제외한 길거리의 사람들은 그것이 일상인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쇼핑을 하거나 갈길을 가고 있었다. LA에서 매일 그런 모습들을 봤지만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나는 그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바닥만 바라보며 아무와도 조금의 스침이 없도록 몸을 웅크리고 목적지로 향했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간 나는 사장님께 내가 본 것들을 말씀드렸다.

"예전에는 마약중독자들이 영화관을 많이 갔었어요. 어둡기 때문에 들키기 쉽지도 않았죠. 상영시간 동안 주사기를 꽂고 있는다고 해요."


 사장님이 알려주시는 정보는 들을 때마다 새롭고 적응이 안 되고 놀라웠다. 건전하고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영화관이 이곳에서는 범죄현장으로 이용되다니. 그러한 말들을 듣다 보니 문득 플로리다주에 살고 있는 아는 동생이 생각났다. 얘는 이런 위험한 나라에서 어쩜 저리도 평화롭게 살고 있는지 문득 안부가 궁금해졌고 며칠 후에 연락을 했다.

"여긴 애초에 대마가 불법인 주라 안전해. 그리고 거주하는 주민 연령대가 높기도 하고."

 미국이 주마다 법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마 하나만 불법으로 제정되어 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를 수 있을까?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법 조항의 유무가 안전한 플로리다 그리고 요즘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펜타닐 중독의 지역인 플로리다와 멀지 않은 필라델피아를 예로 들어 봐도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법은 도덕을 기초로 형성된 것이지만 도덕과 달리 강제력을 가지기에 법의 규율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

 

 문유석 전 판사님의 <최소한의 선의>라는 책에 있는 문구이다. 법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지는데 그 최소한의 기준이 엄격하냐 유하냐에 따라 나라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미국의 경우는 주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멀지 않은 거리에 존재하는 두 지역인 플로리다와 필라델피아만 봐도 알 수 있다. 너무나도 위험해서 차에서 내릴 수 조차 없는 지역과 안전하다 못해 평화로워서 심심하기도 한 지역.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을 그리워할수록, 그걸 지탱해 왔던 기둥들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우리는 약속, 규칙, 양보, 거래, 상호이해, 자제, 존중의 힘으로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날 수 있었고, 한 밤중에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그 힘이 제도화된 것이 법이다."

 

 예전에 <미스함무라비>라는 소설에 감명을 깊게 받아 읽고 또 읽고 심지어 친구들에게 선물까지 했던 적이 있다. 그러던 중 <최소한의 선의>라는 문유석 작가님의 신작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가서 구매했다. 나와 같은 비법조인이 법이라는 어려운 영역을 좀 더 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법의 역사와 작가님의 주관적인 설명이 적힌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강약약강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표본'이라 생각했던 우리나라의법이 생각보다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조금씩 진화하며 나를 보호해 주는구나.'정도의 감동과 이해로 끝이 났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를 잠깐 방문하고 난 뒤에 다시 읽으니 우리나라 법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당히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만 있을 때에는 밤길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교대근무 시절에는 이브닝근무가 끝이 나면 23시인데 굳이 걸어서 집으로 갔고 도착하면 다음날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안전불감증은 당연한 것이었고 내가 안전불감증이라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잘 정돈된 치안에는 우리나라의 국민의 안전에 대한 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해가 떨어지만 바깥에 나갈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했다. 마약중독자가 내 옆을 지나가는데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르고 자칫 실수로 스치면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무서운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도 도움을 청할 수 없기에 늦은 밤에는 숙소 안에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뉴스에서는 정치문제며 국제분쟁 등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월급 빼고는 모든 게 오르고 있고 아무도 나와 내 재산을 지켜주지 않는 것 같다.(애석하게도 내 월급인상률보다 물가상승률, 빠져나가는 사학연금 그리고 세금상승률이 더 높은 건 사실이다.) 직장에서는 하루하루 일분일초가 전쟁이다. 아파서 또는 예민해서 화가 가득한 환자들의 언어갑질이 나를 지치게도 한다. '인간은 서로에게 상냥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 것이 아닌가?'라는 책 속의 문구에 '이 말이 나에게 해당이 될까?'라는 생각도 거의 매일 들었다. 하지만, 당장 보이는 그리고 당장 느껴지는 것만 보고 느꼈을 때에는 몰랐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참 잘 제도화된 나라라는 것을.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코끼리의 몸의 부분 부분만을 만져보고는,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어느 부분만을 떼어서는 '이것이 코끼리이다.'라고 단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원래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그리고 진짜 나쁜 건 알 만큼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다.

 

 나뭇가지만 보이다가 멀리서 바라보니 숲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 전까지는 '대체 왜 이래'였다면 지금은 '그래도 저기보단 낫다.'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흐려지는 청정국가의 명예가 얼른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길거리에서 받았던 사이비종교 홍보물. LA로 또 한 번, 이번엔 제대로 즐기러 여행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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