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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Jun 01. 2024

한 달간 직장 탈출하기

무급휴가 오늘부터

 "너 리프레쉬 휴가 사용하면 좌천된다?"

 "다녀오면 자리 없을걸?"


 몇 년 전에 병원에서는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리프레쉬 휴가'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7년 차부터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재직기간 내에는 1번만 사용이 가능하고 7년 차 때 못쓰면 이후의 노사 협의에 의해 정해진 기간에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대신 그 달에 급여는 없다. 그래도 이러한 혜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입사 초에는 2일 이상 연차를 붙여 쓰는 것도 못하게 했었고, 해외여행은 만 1년이 지나도 (전) 실장님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직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연차 사용 시 국 내외 출입 관련 표시는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사생활이라도 상부에서 알게 된다.) 또한 같이 일하는 부서원들이 모두 동의를 해도 연차를 5일 이상 한 번에 사용하여 해외를 다녀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 또한 COVID사태 직전에 병원차원에서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독려하라고 한 덕에 가능했다. 자잘한 여행은 자주 했지만 1주일 이상의 해외여행은 쉽지 않았다.

 이 제도가 생기자마자 주변의 간호사 선생님들은 어떻게 활용할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꽤 많은 분들이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에서 모든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기에 나 또한 솔깃했다. 학창 시절, 제대로 배낭여행 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취업에 허덕이다 보니 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제도 덕에 직장생활 중 나의 심과 신을 제대로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사용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폐쇄적인 부서의 특성 때문일까? 이에 대해 달갑게 생각하는 선배들은 아무도 없었고 또래 직원들만 서로 응원을 했다. 형식적으로는 사용하겠다는 직원을 말리진 않겠지만 그 직원을 좋게 볼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하겠다 마음먹었고, 나의 연차에서는 총대 메고 먼저 매 맞으려 했으나 다행히도 동기가 나보다 먼저 사용했다. 동기와 나는 작년부터 올해 말까지 사용이 가능한데, 동기는 작년에 그리고 나는 올해 사용하려 했다. 그로 인해 동기는 은근한 비난을 받았고 당연한 권리를 고깝게 보는 동료들에 의해 인류애가 사라짐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부서원들의 비난이 없기도 했고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였기에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를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병원이 적자가 심해지면서 모든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장려하는 상황이 되어 오히려 병원 말을 잘 듣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나에게 긴 휴가가 생겼는데 막상 계획을 하려고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금전적인 문제와 더불어 생각보다 시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꼭 가고 싶었던 몰타라는 섬과 아직 가보지 않은 호주의 시드니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2024.06.02-10 시드니를 다녀와 짐을 바꾸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 13일에 로마로 떠나 가벼운 관광을 하고 몰타로 떠났다가 26일에 돌아올 계획이다.

 이런 긴 여유가 처음이다 보니 과연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떨린다. 짐을 한 번 더 확인해 봐야겠다.

 

 

 

노트북(랩탑) 대신 노트북(공책). 대체 왜 번진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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