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프루트 스탑오버 4(난생처음 새벽 호텔행 2)
내가 힘겹게 탑승한 하얀 차량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밤의 도로를 달렸다. 어두운 길가에는 지붕이 뾰족한, 옛날 만화 속에서 봤던 주택들이 있었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진 못했다. 아마 그냥 어두워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 방문한 낯선 나라에서 1시간이 넘도록 추위에 떨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지쳐서 내가 뭘 보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도 나 아닌 다른 탑승자들도 있었지만, 삶에 의심이 많은 나로서는 혹시나 '납치'나 '인신매매'의 현장으로 향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그게 내 운명이라면... 그래도 아플 텐데...'라는 웃기지만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뻣뻣하게 긴장을 유지했다.(요즘 흉흉한 뉴스소식을 접하다 보면 그때의 쓸 때 없던 상상이 마냥 쓸 때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면서 비교대상이 흉흉한 곳이라 괜히 그 마을에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게 5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달려서 어떤 작은 건물 앞에 도착했고, 운전기사님을 비롯하여 모두가 내리자 나도 함께 내렸다. 모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난 잠시 셔틀차량 운전자를 기다렸다. 그 건물은 내가 예약한 호텔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그곳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떨어진 곳에 있다고 구글맵이 안내했다. 아마 다음 장소로 날 이동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한참을 밖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서있다 보니 기사님이 건물 안에서 나왔고, 나는 물었다.
"난 내가 예약한 호텔이 이곳인데, 이곳으로 데려다주시나요?"
예약메시지를 보여주며 물었더니,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이곳이 체크인하는 건물입니다."
굉장히 황당했다. 내가 있는 위치가 A라는 이름의 호텔이고, 내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곳은 B라는 이름의 호텔인데, B는 A의 소유였다. 즉 A는 A 이외에 B, C, D라는 별도의 이름을 가진 건물이 있는데, A가 로비와 2층이라면 B는 3층, C는 4층, D는 5층의 개념이었다. 다만 이 호텔은 여러 층 대신 여러 위치의 방을 제공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이것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예약사이트는 각각의 건물들을 전부 따로 예약을 받았다. 금액을 따로 비교하지는 않았었기에 자세히는 몰랐지만 이미 '체크인과 룸은 다른 건물에 있다.'라는 불만 가득한 후기가 있었다. (혹시나 독일에서 호텔을 예약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 부분을 기억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후에 상상도 못 할 황당한 일을 경험하진 않지 않을 것이다:))
바들바들 떨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무뚝뚝한 억양의 호텔 직원이 나의 체크인을 도와줬다. 가만 생각해 보니 '화이트 카, 폭스바겐, 터미널 b'만 연신 강조하던 그 그 직원이었다. 다행히도 친절히 나의 체크인을 도와줬고, 내가 숙박할 방이 어디 있는지 확인 후 카드키를 건네주었다.
"Danke schön(감사합니다.)"
그 나라를 방문한다면 '안녕하세요' 혹은 '감사합니다'정도는 그 그 나라의 언어로 알고 있어야 예의랬다. 그래서 알고는 있었지만, 말을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인사를 듣고 용기 내어(내 생각에는 schön을 발음할 때 이빨 사이로 새는 바람까지 똑같이 했다 생각한다.) 인사했더니 직원이 그제야 웃는다. 독일 사람들이 무조건 다 무뚝뚝하진 않구나.
감사는 개뿔, 다른 건물까지 데려다주지도 않는데...
화장품 미스트처럼 흩뿌리는 비를 뺨으로 느끼며 30분 같은 3분을 걸어 예약사이트 속에 있는 그 낡은 건물을 찾았다. 입구로 가서 뻑뻑한 문을 힘껏 잡아당겨 문을 열었고, 내가 드러누워야 하는 방을 찾아갔다. 찾은 방의 문을 열었고 1인용 침대가 보이면서 찬 기운이 느껴졌다. 보일러 따윈 없는 유럽의 가성비 좋은 호텔방은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더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그곳에 있는 '유일하게 따뜻한' 물로 온몸을 데운 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