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깍쟁이라고 했던 이유>

by 뇽뇽

[깍쟁이] 사전적 의미

1 행동이나 말이 얄밉도록 약삭빠른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2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초등학생 때부터의 모든 시간을 함께 걸어온 친구들이 있다. 서로의 삶을 다 알기에 우리들의 대화는 깊고 재미지다. 그 중 한 친구가 나에게 말한 "뇽뇽이는 깍쟁이잖아~ ". 이 한 문장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니 나쁜 뜻 아니라며 웃었지만, 나 외에 모든 친구들은 뭔지 아는듯 공감하고 있었다.

나의 성격은 곰 쪽에 가깝기 때문에, 그 날 이후 그들이 공감하는 나의 깍쟁이 같음이 도대체 뭔지 너무 궁금했다. 나와 같은 외동딸인 고딩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 친구도 뭔가를 아는듯 공감하는 눈치였다.

외동과는 관계없는 부분이었다.


1년이 넘게 끈질긴 질문 앞에 이유를 찾았다.

당연히 신랑도 나의 깍쟁이 같음을 알고 있었다. 신랑이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준 "손해보기 싫어하는 부분이 있어"라는 말에 힌트를 얻은 덕분이다.

자기 스스로에게 가장 객관적이지 못하는게 인간이라지만, 난 베풀줄도 알고 나름 넓은 마음의 소유자로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우리 아빠도, 엄마도 형제 중 막내다.

아빠는 막내같은 막내였고, 엄마는 막내같지 않은 막내였다.

아빠는 어려운 환경 때문에 받는 입장에 많이 있었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막내의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엄마는 어려운 환경 때문에 받은 사랑을 더 베풀려 노력했고, 그 감사를 어떻게든 표현하고 인사하려는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난 왜 아빠를 닮았었던가. 어려웠던 시간들에 자주 있었던 나도 그 감사를 조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돌아보니 생각보다 더 많이 인색했고, 좁은 사람이었다.



부끄럽지만 용기내어 기록해본다.

아빠가 몸이 많이 안 좋으셔서 요양보호사님이 하루에 3-4시간 씩 매일 오셨었다. 당시 해외거주 중이었던

유일한 보호자 나는 한국에 나와 1주일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복귀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아빠 기침소리가 아무래도 이상해 보호사님이 모시고 병원에 갔는데, 바로 입원 절차가 필요한 심각한 폐렴 상태여서 난 급히 다시 나왔고, 그 후 3-4개월 아빠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님은 나에게 생명의 은인같은 존재였다. 거동이 힘들어진 아빠의 전동 스쿠터를 본인에게 팔면 안되겠냐는 보호사님의 제안이 있었다. 어차피 내게는 처치곤란의 물건이었다.

장애등급으로 아빠가 저렴한 금액으로 구매한 이 전동스쿠터를 생명의 은인같은 분에게 무료로 드려도 부족하지 않은가?

그때의 나는 감사의 마음, 스쿠터 값을 별개로 나누어서 생각했다. 감사한 건 감사한거고 이렇게말이다.

정확한 금액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헐값이 아닌 적당한 값으로 보호사님께 팔았다.

더 무서운 건 아까 외동딸 친구한테 한소리 듣지 않았으면, 그 후 보호사님께 형식적 인사만 한 채 식사대접도 하지 않고 넘어갈 뻔 했다는거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보면 대략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보인다. 예전에는 일면으로 쉽게 단정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반감이 이었는데, 이젠 그처럼의 분명한 사실도 없는 것 같다.


나의 인색함과 속좁음과 당연하게 생각하는 성격이 타인에게 어떻게든 전달되지 않을리 없다.

무의식속에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담겨 드러났을 것이다. 얄밉고, 재수없고, 짜증났었을 것 같다.

그렇게 행동하는 친구에게 느끼는 당연한 이 감정들을, 늘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던 나는 그 당연한 감정조차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내 삶의 어려움을 공감해주고 애정해준 친구들의 사랑 넘치는 애칭이었다. 깍쟁이.


이제부터라도 나의 깍쟁이 성격을 고쳐보기로 노력해서, 내가 되고 싶은 나와 객관적인 내가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겠다.


사랑의 마음으로 기다려주고 이해해줘서 고마워. 깍쟁이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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