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억 주인공 될 뻔
엄마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천국으로의 영원한 여행을 떠난 후에야, 조아빠는 긴 시간의 바깥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복귀했다. 아빠와의 어색한 둘만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빠의 바깥 생활 동안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간간이 밤무대에 대타로 나가 일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는 행사장의 귀재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행사장이라는 곳은 자칭 '홍보관'이라는, 쉽게 말해 어르신들께 건강식품 같은 것을 파는 곳이었다. 관련 종사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내 눈에는 노인들을 겨냥한 사기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오시는 어르신 분들을 즐겁게 해드려 기분을 맞춰드린 후, 본격 영업을 시작하는 거다. 전직 밤무대 아저씨에게 꽤나 어울리는 곳이라지만,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돈을 벌 수는 없었을까.
아빠는 종잣돈이 있으면 홍보관을 차리고 싶어했다. 진지하게 꿈꾸었던 철없는 아빠의 바램이었다. 아빠는 늘 큰거 한방을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모든 것을 잘 풀릴 것으로만 바라보는 낙관주의 성향이 강했다. 홍보관을 차릴 수 있는 돈도 없었거니와, 그 돈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리며 난, 혼잣말을 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던 아빠는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 대출을 받아 조그만 트럭을 구입했고, 과일 장사를 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아빠가 일반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어보려 한다는 게 신나고 좋았다. 우리 동네 지하철역 앞에서 트럭 과일 장사하는 아빠를 매일 같이 찾아가 장사를 도왔다. 딸을 기특하게 여겨 토마토를 구입 해주신 남자손님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나, 끈덕지지 못한 조아빠는 그 해 1년으로 과일 장사를 접었다. 물론, 차를 사기 위해 대출받았던 돈 또한 갚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빚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상태였다. 조아빠는 연체되었다는 독촉장을 받으면서도, 파산 신청하면 끝이라며 나를 이상하게 안심시켰다.
끈덕지지 못한 얘기가 나온 김에, 이것도 적어야겠다. 조아빠는 배에 왕(王)자 복근을 만들 정도로 건강했는데, 병세가 시작되며, 사랑하는 딸을 위해 보험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주객이 전도되어 보험금을 기대하는 마음에 "조그마한 암이 생기면 좋겠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몇년 전 대장암 초기로 보험금은 받고, 비교적 가볍게 마무리 된 적이 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의 온 세포 신경들이 이 말을 들을까 염려되고 걱정되는 건 나뿐이었다. 혀의 능력이 있음을 조아빠는 왜 몰랐을까. 아빠는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치고 아빠 집 정리를 하다가 7-8개의 보험증권을 발견 했다. 당연히 전부 중도해지 한 것들이다. 딸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보험에 가입했지만, 담당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새로운 보험 약관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여러 이유로 전부 중도에 해지한 것들이었다. 물론, 지난번 받았던 보험금도 기존 것을 해지하고, 신규가입한 몇달 차이로 반액도 받지 못 했다.
아빠의 보험 전부 살아 있었다면 난 몇억 부자가 되었을 거다. 마지막까지도 조아빠스러웠다.
그의 삶을 생각하면 너털웃음만 나온다.
아빠랑 둘이 살면서 난 엄마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딸이 봐도 뭐하나 진득하게 하는게 없어 답답하기만 한데, 남편으로서 여자 문제까지 힘들게 했으니,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된다. 그는 내게 배우자가 아닌 아빠였기에, 그래도 나는 엄마보다 행복한 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