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잘못이 아니다(1)
나약한 자신을 인정하기
내가 왜 혈액암이 걸렸을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았다.
방사선에 노출되거나 위험한 화학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이 병은 유전도 아니라고 하니까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 뿐.
발병 5년 내에 급격한 스트레스를 주었던 사건을 2가지로 추려낼 수 있었다.
하나는 육아휴직 중인 동료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었다.
나는 사내에서 정식 임명장이 없이 몇 명의 직원들에 대해 대표성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 그 직원 중 한 명이 출산과 육아휴직을 가게 되었는데, 나의 상사는 그녀의 복귀를 걸고 계속해서 실적향상을 요구했었다.
엄청 애를 썼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적으로 그는 회사의 공로상을 받고도 이듬해에도 계속해서 협박했다.
올해 작년보다 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녀를 데려올 수 없을 것이라고.
어느 지점에서는 도저히 더 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사실 확인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회사 윗단에서는 그런 생각이 없었고 새로운 정부 하에서는 그런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했는데도
그가 나에게 그런 식으로 거짓협박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그 상사에게 소극적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죽기살기로 일하지 않는 것'이 그 저항이었다.
그는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운 갈굼, 일 떠넘기기, 팽팽한 긴장감으로 나를 압박해왔다.
출근하다가 말고 차에서 펑펑 우는 날들이 몇 달씩 계속되었다.
또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자, 육아휴직자 복귀문제 스트레스의 원인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간경화 환자로 오랫동안 투병했다.
어느덧 더 이상 내과적 치료로는 한계에 다다라서 간이식 외에는 더 해결책이 없게 되었다.
서울A병원은 아버지와 혈액형이 다른 내게 교차이식을 권했다.
내 간을 다른 환자에게 주고,
그 환자의 보호자가 내 아버지에게 주는 것.
'가족 중에 가장 경제적 기여도가 높은 내가 기증을 하게 되었을 때, 그 기간의 수입이 없는 건 어떻게 하지?'
'혹시라도 부작용이 생겼을 때, 누가 나의 간병/경제적 뒷받침을 해줄 수 있나'에 대해서 고민이 생겼다.
아버지는 한사코 내 간을 희생해서는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기증자를 기다리던 중 아버지는 다른 암이 또 생겼고, 그 때는 더 이상 간이식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가 망설이는 동안 아버지가 죽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겼다.'
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후로는 주변의 사람이 관계된 일에 대해서는 극한의 노력을 하게 되었다.
육아휴직 중인 동료를 지키는 일은
그 일 자체를 넘어서서 '다시는 내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해진 것이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아니었다.
내 스트레스의 원인은
아버지의 죽음이, 그리고 그 여직원의 권고퇴사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지나친 유능감은 영역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면 된다'는 환상과 함께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안 됐다'는 죄책감을 함께 심어줬다.
그것들은 내 잘못이 아니었고,
그 상황들을 역전시킬 만큼의 역량을 가진 개인은 어지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한 내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더니
후회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