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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키즈존을 혐오한다

사회적 부채를 먹튀하는 노키즈존 옹호자들

by 경칩의목련

"개와 중국인의 입장을 금합니다."
식민주의가 팽배하던 20세기 초, 중국 상하이 조계지의 상점들에 붙어있었던 문구다.

그로부터 100년 가량 지난 대한민국에는
"No키즈존, 반려동물 OK"란 문구가 붙어있다.
100년만에 대한민국의 자녀들의 지위는 식민지 피지배민보다 못하며, 심지어 동물보다 못한 위치로 몰락해버렸다.

그러나 No키즈존 문구를 붙인 이 또는 소비하는 이들, 그 어느 누구도 이 사회에 빚을 지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아이로 태어나서 사회적 허용과 배려 속에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는 아이, 노인, 장애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 구성원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그 아이는 다시 어떤 아이의 부모로 변화하기도 하고, 본인이 다쳐 장애인이 되기도 하며, 또는 노인이 되어 젊은이들이 낸 세금으로 사회보장을 받는다.

즉, 모든 연령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고 있으며, 그 셈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지만 삶 전체를 보았을 때는 공평해진다.

그런데 일부면서도 꽤나 많은 성인들이, 자신의 성장기에는 사회적 배려와 협조를 모두 취해놓고서,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되어 그것을 "먹튀"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혐오로 사회적 자본을 해체시키는 현상.
"그것이 바로 No 키즈존"이다.

이게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후에 사다리를 쓰러뜨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객당 단가가 낮아 수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끄럽다는 이유로,
어지른다는 이유로,
No 키즈를 표방하는 그들에게도 반드시 아이였던 시절이 있다.
어느 인간이든 같은 사회 속 구성원들의 배려, 이해를 받지 않고 자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익이 되지 않는 손님, 시끄러운 손님, 어지르는 손님은 성인들 중에도 매우 흔하다. 공항, 터미널, 식당, 병원, 카페 등등 그 어느 곳에서나 다양한 연령대로 목격된다.
그럼에도 No 50대존, No 계약직존, No 저연봉존, No 지잡대존, No 고졸존, No대출자존, No국산차존 등등은 없고(부산의 No 교수존은 사회적반대로 매우 빨리 사라졌다.), No 키즈존의 표방이 가능한 것은
첫째, 그를 동조하는 이들에게는 다시 겪지 않을 대상이라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 아이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며,
또한 셋째, 부모들 또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사회적 부채에 공감하기 때문에, 법적 집단적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사회적 배려와 도움을 받는다지만

결국은 그 아이들이 다시 현재의 성인들을 부양하고 배려해줄 이들이기 때문에,


지금 No 키즈존 표방하는 이들은 앞으로의 사회에 무임승차 내지는 더이상의 공헌을 하지 않겠다고 표방하는 것과 다를바 없으며, 실상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아니면 생산연령이 끝날 무렵에는 집 안으로 문을 닫고 들어가 자살하려는 걸까.)

"No키즈존"에 대해 설명 듣고 뒤돌아가는 어린이를 본 적이 있다. 그의 쓸쓸한 표정과 어깨를 보면서, 나중에 이 세대들이 어른이 되면 "No틀딱, No한국어, No세입자, No연봉일억미만잡, No읍군민"등과 같은 차별들로 복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들의 성장기에 이런 차별, 공공연한 혐오표현이 허용됨을 배웠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땅에는 조선말 주문을 받지 않는 점포들이 있었고, 조선 땅에 있는 점포인데도 일본인이나 (조선인이지만 일본식 교육을 받은)명예일본인들에게만 허용된 곳들을 보며 정상 조선인들은 통탄하고 분개다.

역사교육이 약화되고 철학수업이 선택과목이 된 요즘, 오로지 돈의 논리만 가르쳐 성장된 현재의 성인세대들은 앞서 자신의 조상들이 치를 떨었던 차별을 손수 적어붙이기에 이른 것이다.

나는 No키즈존을 혐오하며 그것을 당당히 표방하는 주인 및 동조자들의 무지 및 이기심을 혐오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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