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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정의로울 거라는 자만,
돕기가 두려운 마음

by 경칩의목련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외출을 다녀왔습니다.

학부모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잔액부족으로 곤란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카드를 찾으며 뒤적이는 아저씨를 보면서 도와줄지를 고민하는 중에 아저씨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2정거장이 지나칠 때까지 다른 카드도 현금도 찾지 못 했던 아저씨가 버스를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망설였던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버스 기사님은 결국 수금을 못한 것이 곤란한 것인지 언짢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빠르게 도와줘야지. 그랬더라면 그 승객도, 기사님도 보다 빨리 기분 좋아졌을 테고, 그에 쓰이는 천 몇백원은 참 가치있게 느껴질 것이니까.


약 30분 후쯤,

상담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탄 버스 안에서

이번에는 어떤 할머니가 잔액부족인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꽤 여러 정거장 째 기사님과 주변 승객들로부터 그 카드가 잔액부족이니 현금이나 다른 카드를 내놓으라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습니다.

3정거장이 더 지났을 때 할머니는 내리려고 했고, 기사님은 뒷문을 닫고는 "돈을 안 내셨습니다. 내고 하차해주세요."라고 하셨기에

아까의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서 저는 얼른 카드를 꺼내서 찍었습니다.

"아저씨, 제가 대신 낼게요."

"분명히 찍었는데 안 줬다고 하네."라며 할머니가 내리시는데 순간 '엇'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나 밝았다랄까요, 눈도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뒷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하자 기사님께서 억울한 목소리로 제게 소리치셨습니다.

"그 할머니 지난번에도 그러시고 계속 그러세요."

'아, 그래서 기사님 뿐만 아니라 주변 승객들까지(늘 그 시간대에 타시는 분들이었나봅니다) 한 입으로 잔액부족이라고 얘기했구나.'

그 순간 퇴근시간 버스 안의 많은 눈들이 저에게 동정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실갱이 하는 동안 버스발차가 지연되는 것을 막았고, 곤란해질 수 있는 기사님을 도왔다는 것으로 위안하기로 하였습니다.

"기사님 감사합니다!"

"네 손님 안녕히 가세요!"


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오늘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어쩌면 가는 길에 잔액부족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던 아저씨 승객 또한 상습범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쩐지 그 아저씨는 버스를 내리더니 유유히 다른 곳으로 걸어가버린 것이 이상했습니다.

보통은 충전소를 찾아 두리번 거리거나 주머니를 뒤적이면서 다음 버스를 탈 방법을 고민하는데 말이에요.


저는 어줍잖은 자만심으로 세상의 민심이 야박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일들로 몇 번 데이고 난 후에는 쉽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가 어려워지는 것일텐데요.

서울의 지하철에서 길을 물어보면 사람들이 모른척 지나친다던 제 친구의 경험도 이런 이유에서 생긴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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