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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봄밤을 보내는 우리를 위한 위로

평화에의 증언

by 경칩의목련

1957년.

그때 대한민국은 휴전 후로 재건을 위해서 애쓰던 때였습니다.


당시 GNP는 8700원(74달러)였는데, 이 해에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무상원조를 급격히 줄이면서 한국 경제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원조물자와 자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는 대한민국 기업과 개개인의 삶 전체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한편, 1957년 12월 15일에는 "평화에의 증언"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발표되었는데 총 9인의 시인-김종문, 이인석, 김춘수, 이상로, 임진수, 김경린, 김수영, 김규동, 이흥우-이 참여하였습니다.


본 시집에 실린 작품 중 하나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김수영 시인의 '봄밤'인데요. 한국 전쟁 때 북한군에 끌려가서 강제노동을 하였다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고서 참여한 시집에 실렸던 작품이기에, 더욱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 '봄밤'의 키워드를 '인내'라고 생각합니다.

1957년처럼 2024년도는 시야가 불투명하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쉬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밤과 같은 지금이지만

너무 애태우지 마시고

때를 기다리는 땅속의 벌레처럼 인내하다가

바라던 때가 오면 날아오르시길 빕니다.




봄밤 /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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