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최근 나는 직장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많이 고통스러웠다.
정확히는 직장상사와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원인이다.
깨어있을 때는 위장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고 소장 대장이 꼬이는 듯한 통증이 있고
잘 때는 반쯤 깨어있는 상태로 직장상사와의 대화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리기 때문에 늘 비몽사몽 피곤한 상태이다.
내가 열심히 해서 해결하려 하면 ' OOO씨는 앞에 있던 부서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업무를 대하네. 우리 업무는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잘 넘기는 것이다.'라는 피드백을 주고, 원칙에 준해서 반려시키면 '이건 좀 성사시켰어야지.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넘긴 거예요?'라고 피드백을 받았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나의 업무 내용보다는 말투에 대해 지적하고 그에 대해 본인의 '기분'을 표출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전화를 안 받기에 이르렀다.
화상, 전화, 문자 어느 형식으로 대화하든 그 사람이 기분이 나쁘게 되면 그것으로 업무대화가 종료되었다.
그 감정 반응을 나는 예측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와 접촉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 16년을 해오고, 각종 봉사단체 종교단체에서 활동해온 내가 이렇게 빈번히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것일까?
스스로 반성도 해보고 패턴도 파악해보려 그 사람을 겪었던 주변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았는데, 그들의 조언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해결방안을 찾으려 하지 마라. 그냥 받아들여라."
이 조언을 들었지만
나는 도대체 '받아들임'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왜 이런 부당한 상태를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인지 납득도 되지 않고, 계속되는 상황 속에 나의 통증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뭉개뭉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법정스님의 2000년도에 하셨던 법문을 듣게 되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의 말씀이다.
스님께서는
1. 요즘 사람들은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접속한다고 하셨다.
접촉은 쌍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직접적인 것에 반해, 접속은 일방적이고 간접적이어서 젊은이들은 사람관계를 일방적으로 접속하였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로그아웃하듯이 나가버린다는 것이었다.
그 상사분의 대화 패턴에 딱 맞는 얘기였다. 본인이 기분이 내킬 때 연락이 와서는 본인이 마음에 들면 대화가 지속되고,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화 상대방인 나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는 듯이 종료시켜버렸기 때문이다.
2. 요즘 사람들은 뜸을 들일 줄 모른다고 하셨다.
무슨 문제든 또는 어떤 일이든 간에 그것이 해결되고 성사되려면 일정 시간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기다리지를 못한다는 말씀이었다.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에는 봄이 되어 씨를 뿌리고 싹이 자라나서 추수를 하기까지 여러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알았지만, 현대의 산업화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든 즉각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상사와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를 원했는데,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은 '상사 분의 기분/기질에 대한 나의 반응'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뜸을 들일 시간이 필요했음을 내가 몰랐던 것이다.
법정스님께서는 법문하시고 나서 24년이 지난 나라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이런 말씀을 예견하시고 법문을 하셨으니
정말이지 대단하시고 훌륭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접속하지 않고 쌍방향으로 접촉하며 목표하는 일이든 당면한 문제이든 그것이 성사되기까지의 뜸들이는 시간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