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려서 살아보는 건 처음이라

1. 시작하는 글

by 경칩의목련

나는 30대의 혈액암 환자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끝으로 암 치료는 종료한 상태로 외래를 통해서 추이를 확인하는 중이고, 부수적인 질환으로 여러 과를 다니고 있다.

투병과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육체적 심적 고통을 경험하게 했다.

항암 중에는 제발 1분이라도 통증이 멈췄으면, 이식 후에는 제발 살았으면,

치료 종료 후에는 일상으로 돌아가서 회사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는 식으로 욕심이 계속 커졌다.


치료종료 1.5년,

치료를 끝내는 것만 목표를 하다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니

예상하지 못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고 고독, 불안, 우울에 많은 나날들을 잠식당했었다.


'나만 젊은 시절에 암에 걸렸나?'

'나만 일상회복이 힘든건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우연찮게 암재발 연구모임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아, 다들 각자 고군분투 하고 있구나!'라고 깨닫게 되어

나의 일상회복기를 기록하고 공유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세상에는 많은 암 정보가 있지만 대부분 '진단'과 '치료'에 정보가 집중되어 있다.

건강 다큐멘터리에도 암 진단과 치료를 90%정도 보여주고, 마지막 몇 분 동안 목가적인 풍경 속에 여유있게 살고 있는 암환자와 그 가족들을 보여준다.

나는 그런 정원이 없고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여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하지만 가까이에서 목격한 우리 병동의 환자들은(어떤 분들은 세상에 안 계신다.) 아직도 여기저기 아픈 곳이 있으며 재발의 두려움을 걱정하고 집안일하랴, 장보랴, 나가야 할 돈을 만드려고 애를 쓰고 있다.

투병 동안 예금은 바닥을 드러내다 못해 마이너스에 도달하고, 돈벌이+간호+환자의 짜증받기까지 병행한 가족들 얼굴에는 몇 곱절의 세월이 성큼 다가와 있는 모습이 현실적이고 대다수인 것 같다.


일단 치료가 끝났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1. 투병의 여정을 견뎌낸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자.

투병을 마친 나를 격려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항암기간에는 제발 1분이라도 이 온몸을 짜부러트리는 통증이 멈추길 고대했다.

27kg이 빠질 정도로 구토와 설사에 시달렸고 기저귀를 차고 있는 기간도 있었다.

게다가 항암부작용 덕분에 절개시술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곳은 2주 이상 아물지 않고 계속해서 통증과 출혈을 동반해서 마약성 진통제를 구걸하면서 지낼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런 과정을 견뎌냈다.

(나는 암을 이겨낸 게 아니다, 그냥 버텼다.)

견뎌낸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장하다고 생각하고 나를 토닥여줬다.


2.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치료기간 동안 좁은 병실에서만 움직이면서 많은 근육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움직이려 하면 숨차고, 지치고, 아프고, 부상을 입는다. 신생아가 뒤집고, 기고, 앉고, 일어서고 걷는 과정을 차차 해내듯이 나 또한 이런 단계를 거쳐서 몸을 회복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아직도 식이, 투약 등 지켜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면 여전히 몸을 챙겨야 한다.

마음의 회복도 따로 챙겨야 한다.

나는 병동에서 여러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거나 들었다. 아직도 '살 수 있다'를 되뇌던 아저씨와 원피스를 입고 소녀처럼 이식실을 향하면 언니가 기억난다. 이런 기억들은 내게 큰 상흔을 남겼다.

그리고 매번의 검사나 시술 때마다 들었던 부작용 경고는 마치 사형예고를 듣는 것 같았고, 약 1달간 좁은 독방에서 비닐옷과 소독약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은 지금도 이따금씩 생생하게 재현된다.


3. 나는 암과 함께 살아가는 첫 여정이므로 서툴 수 밖에 없음을 안다.

일상을 돌아와도 예전처럼 움직여지지 않고, 예전처럼 마음이 반응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볍게 들어올리던 짐을 들어올리다가 허리를 뼈서 병원을 가게 되고, 별 것 아닌 말이나 방송에 펑펑 울거나 자신감을 잃고 방에 쳐박히기도 한다.

회사로부터 "당신 몸이니까 당신이 제일 잘 알지 않아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얼마나 당혹스럽던지...

"암에 걸려서 살아보는 건 제 인생에 처음이고, 암에 걸려서 직장생활하는 건 더욱이나 들어보지도 못 한 거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라고 답하고는 또 울 수 밖에 없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일해야 한다.

현재 전체 인구중 25명 중 1명은 암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2019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은 평생에 1번 이상 암에 걸릴 것이라는 통계가 있다.

나는 내가 아프기 전까지 그렇게 많은 수의 암 환자들이 살고 있는지 몰랐다.

때로는 암환자라는 낙인 (동정, 복 없는 사람이라는 조롱, 일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으로부터 피하기 위해서, 또는 딱히 말할 기회가 없어서.

나의 유병사실을 고백했을 때 의외의 사람에게서 '저도요'라는 답을 종종 받으면서

'완치된 암 선배들은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모습으로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암 진단과 치료에 대한 방송은 많지만 암 치료 이후의 삶은 가끔씩 산 속에 들어가서 자연주의 삶을 살거나, 은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그 고통스런 치료의 목적은 남은 삶을 집에 은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일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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