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직은 치료에 집중할 때
치료가 끝나니
지금까지의 입원 생활을 한 번에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내가 목과 엉덩이에 튜브를 꽂은 상태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려 해서
가족들이 얼마나 말리고 걱정했었는지 모른다.
어떤 환우분이 '본인은 혈액암도 이겨낸 슈퍼맨'이라며 마치 초월적인 존재가 된 것처럼 말하고
환우들에게도 막 이것저것 먹어라, 마스크 벗어라 권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치료가 끝나고 아직 식이, 투약, 외래가 남아있다면
이것들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1. 약 무조건 먹자.
주어진 약은 무조건 최우선 과제로 반드시 지켜서 먹어야 된다.
외출을 할 때는 꼭 예비로 다음 약을 챙겨서 움직이자. 예상보다 일정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꾸 토할 것 같을 때도 약은 먹는다.
자꾸 구토가 올라올 때는 적은 양의 물로 약을 삼킨 뒤에 입을 막고 누웠다.
그러면 약이 잘 올라오지 못 하고, 입까지 올라왔을 때 다시 한번 꿀떡 삼킨다. 불쾌하지만...
만일 못 참고 토해버렸다면 병동 또는 외래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다시 먹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게 좋다.
나의 경우에는 워낙 토쟁이라서 입원해있을 때 선생님들이 지침을 잘 가르쳐 주셨다.
10분 이내에 토했고 약의 원형이 보인다면 다시 먹기로.
이건 내가 먹는 약의 경우이기 때문에 각자의 약에 대해서는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저히 안 되면 도로 입원해서 주사처방을 받는 방법을 선생님과 상의해보자.
(내가 그렇게 됐었음...)
2. 의료진의 처방에 반대하는 근거를 인터넷에서 찾지 말자.
퇴원할 때 주치의 선생님이 설명하시고, 간호사실에서 다시 한번 안내문을 준다.
'이런 저런 거 드시지 마시고, 이런 저런 행동하시면 안 됩니다'.
심지어 내가 다니던 병원은 영양실 전화번호를 주면서 '안내문에 없는 음식은 여기에 물어보세요.'라고 친절히 안내해주신다.
그리고 외래에서도 얼마든지 먹거리와 행동에 대해서 물어볼 기회가 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끊임없이 예외적인 경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혈액암의 경우에는 이식 후 3개월, 6개월, 12개월까지 식이제한 사항이 많다.
이식이 된 조혈모세포들이 외부의 균들과 싸울 정도의 혈액성분들을 만들 때까지 일정 기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항암을 한 환자라면 짧게는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통조림, 끓인 음식만 먹던 환자들의 소원은 생고추장 한입, 생김치 한 조각, 상큼한 딸기 한 개를 베어먹는 것이 된다.
그래서 병원에서 아직 해당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도 인터넷에 올려서 예외를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제가 너무 먹고 싶은데 혹시 이런 건(누가봐도 안 되는 금지음식) 먹어도 되나요?'
라고 물어본 다음에 '저는 먹었는데 괜찮았어요.'라는 댓글이 달릴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
또 거기에 '저는 먹었는데 괜찮았어요.'라고 답하는 사람들도 있고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너무 먹고 싶었어요.'라고 글쓴이가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면 아찔하다.
하지만 금지음식이나 금지행동을 해서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이렇게 못 먹느니, 실컷 먹고 죽는 게 낫겠다.'라고 하지만
바로 쓰러져 죽으면 다행이지 시간을 끌면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다 죽으니까 문제다.
한 번은 환우회 카페에 간장게장을 너무 먹고 싶다는 글을 쓴 항암 환우가 있었다.
많은 댓글이 '안된다, 주치의에게 상의해라'라고 했는데도 계속 '피수치가 얼마 이상이면 우유는 먹어도 된다던데요'라며 반박하던 그.
'나도 먹지말라는 거 먹어봤더니 똥꼬가 불이 날 것 같이 많은 설사를 했다. 당신이 먹더라도 의사는 상관이 없다. 본인이 가장 괴로울 거다.'라고 했더니 그 이후로 더 이상 댓글이 없었다.
그 사람도 똥꼬가 불이 났을 지, 안 먹었을 지는 모르겠다.
내가 먹은 건 치즈케이크였다.
병원에서 받았던 안내문의 내용을 공유하는 건 괜찮지만,
사람마다 치료경과가 다르기 때문에
절대 병원지침을 넘어선 것들을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괜찮다고 하지말자.
3.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회복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회복이 빠르거나 느린 것이 병의 예후와 일치하지 않는다.
천천히 피수치가 올라온대서 몸이 나쁜 것이 아니고, 빨리 피수치가 올라온대서 암에게 잘 이겨내는 것도 아니었고 연관성이 없었다.
나는 같은 병실에 있었던 비슷한 또래의 환우에 비해서 피수치가 내려가는 것도 올라오는 것도 생착도 느렸다.(그런데 몸무게는 더 빠르게 늘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서로의 활력 차이는 거의 없다.
인생사가 원래 그러하지 않은가? 외모든, 성적이든, 재력이든 남과 비교하면 난 항상 루저가 될 수 밖에 없다. 어느 측면에서든 나보다 나은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니까.
약 먹고, 하지말라는 거 하지말고, 스스로의 속도를 믿으며 회복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