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의료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의 치료와 경과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갑작스런 진단 후에 초조함 및 어리둥절한 상태로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입원해있는 다른 환자들의 경과를 보면서 내 병의 예후를 점쳐보게 된다.
이때 환자는 치우쳐진 정보를 얻게 된다.
운이 좋으면(?) 빨리 치료하고 퇴원하는 환자를 보게 되겠지만,
대부분은 장기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만나게 되고 그 큰 병원이 장기입원시켜줄 때는 예후가 안 좋은 경우이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커진다.
의사의 설명보다도 내 눈으로 보는 그들의 신음소리와 야윈 몸, 지친 보호자의 얼굴은 너무나 실감나고 곧 나의 일로 이어질 것 같다.
내가 봤던 사례들 중 일부만 여기에 적어본다.
탕비실에서 만났던 어느 보호자분은 내 나이 또래의 아들이 이식 부작용이 심해서 계시다고 했다. '절대 이식하지 마세요. 지금 몇 년을 이렇게 사람구실 못하고 삽니다.' 그 보호자는 늘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너무나 지친 모습이었다.
복도에 덜그럭덜그럭 폴대를 밀며 걷는 환자가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식사 후에는 1시간씩 걸었다. 쌔액 덜그럭 썌액 덜그럭 소리가 끊임없이 반복되니 짜증이 났다. 알고보니 그 환자는 이식부작용으로 한참동안 누워있다가 이제 살아나서 움직이게 되었고, 몸을 회복해야 된다는 생각에 죽기살기로 걸었다고 했다. 어느 날 조용해지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
얼굴과 목까지 축구공처럼 부분부분 검정색으로 변한 분이 있었다. 유명한 요리전문가였다고 한다. 이식하고 나서 6개월쯤 되었을 때, 입원 동기들이 연락이 뜸해져서 본인처럼 몸이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다고 했다. 나중에야 입원 동기들이 하나 둘씩 나들이를 다니느라 바빠서 연락을 못 한 줄 알았고, 자신은 너무나 피곤해서 나갈 엄두가 안 난다는 점이 이상해서 외래를 당겨 왔더니 재발했음을 발견했다. 새로운 항암제는 그 분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
꽃처럼 예쁜 이름과 예쁜 외모를 가진 분이 있었다. 그 분은 자주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누워있었는데, 일어날 때쯤에는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나이든 어머니에게는 입원사실을 숨겼기 때문에, 이따금씩 어머니와의 통화할 때면 너무나 씩씩하고 평온한 목소리였다. 초등학생이던 아이에게 이식을 받고서 밥도 잘 먹고 말도 잘하더니 급성숙주반응으로 순식간에 죽고 말았다.
맞은 편 침대의 어느 환자분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 했다. 비명을 지르다가 진통제를 맞으면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울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 분이 평상시의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건 딱 한 번 보았다. 작은 아들이 왔을 때였는데, 'A카드랑 B카드가 6개월 할부가 되니 그것으로 병원비를 내고 안 되면 C카드로 돌려막거라. 급한 일 있으면 외삼촌한테 연락드리고.'이라고 말한 것이 처음이었고 이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항상 조용히 본인의 이름을 부르며 "OO야 화이팅, OO야 힘내"라고 하던 환자분이 있었다. 분명 나보다 예후가 좋았는데 어느 밤 갑자기 투덕투덕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그 분이 다른 병실로 옮겨졌고, 나 또한 격리가 되었다. 그 분에게서 결핵균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날 부터 내게 2알의 결핵약이 추가됐다. '안 그래도 먹을 약도 많고 토하고 있는데...' 화가 났다. 하지만 이내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이 들렸다.
이렇게 입원병동에서 많은 사연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항암을 하고 이식을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처치 전에 진행되는 부작용 설명을 들어봐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다들 재발해서 오는데 왜 제가 이식을 받아야 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식 후 완치된 사람들은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가니까요.
완치된 사람들은 입원하지 않아요."
그렇다,
내가 투병하는 동안 듣고 본 예후는 입원 환자와 암환우회 카페의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투병중인 사람들끼리 서로의 불안을 나누게 된다.
치료가 끝난 이들은 아팠던 기억이 괴로워서, 또 어떤 이들은 현재의 삶에 충실히 살고 있어서 더 이상 환우회 카페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일상회복기를 쓰게 되었다.
저도 고통스러운 암 치료 끝에 일상회복을 했습니다.
당신께서도 희망을 갖고 버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