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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Apr 15. 2022

스물아홉, 내 머리에 뭐가 있다고요? 2

휴직 신청서를 내다.

그날 밤, 도무지 답이 없는 고민에 빠졌다.


'뇌하수체 선종'이란 게 죽을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고 살기에는 머리에 종양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고, 하필 다음 달에는 내 인생 첫 시험관 시술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시험관을 준비한다는 사실만으로 일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바로 휴직이라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일단 첫 번째, 새로운 부서에 발령받은 지 세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이번 인사 때 거의 새로운 직원들이 영입되었는데, 아직 다들 자기 업무를 파악하고 있는 시기였다. 즉, 자신들의 일도 벅찬데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기 어려운 상태였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기획'이라는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었고. 거의 최연소로 회사에 입사해 초고속 승진을 한 나로서는 이 분야의 커리어를 쌓는 것이 아주아주 중요했다. 특히 우리 회사에서는 '기획' 담당을 대놓고 승진 항목 파트에 넣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자리로 보고 있었다.


세 번째, 돈이 없었다. 아주 영혼을 다 끌어 담지 못해 영혼의 그림자까지 끌어당겨 집을 샀다. 그 영혼들의 대가로 지불한 이자는 어마어마했고, 일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우리 부부의 월급으로 간신히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는 집안 사정이었지만, 그중에 휴직으로 인하여 월급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당장 먹고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주변에서 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어디에 조언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저 참고할 수 있는 건, 인터넷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을 찾아서, 그들의 글을 읽어보는 것뿐이었다. 남편의 의견도 비슷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 이제 쉬어갈 차례가 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온전히 '나'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휴직을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휴직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휴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이 한 가지 이유는, 휴직을 할 수 없는 모든 이유를 상쇄시킬만한 이유였다. 


월-금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출근해서 하루 종일 갈리다가 퇴근하는 지금 나의 업무, 그리고 하루 연차를 내기에도 눈치가 보이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던 이 직장생활과 병행하면서 도저히 뇌종양 치료와 시험관 시술까지 병행할 용기가 없었다. 


가뜩이나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내가, 어찌어찌 그 어렵고 힘들다는 시험관 시술까지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 갖은 스트레스들로 인하여 유산을 할까 봐 두려웠다. 내 머리에 찾아온 불청객도, 나도 모르게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나갈까 봐 무서웠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혹시라도 나에게 찾아올 죽음이 두려웠다. 그것이 단 0.000x%의 확률일지라도. 그게 나에게 찾아온다면 그건 100%가 되어버리는 거니까.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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