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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Apr 15. 2022

스물아홉, 내 머리에 뭐가 있다고요? 마지막 편

그렇게 반백수가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씻고,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아침에 처리해야 할 업무를 모두 마친 뒤, 아침 식사를 사러 가야 할 8시가 되었다. 이윽고 옆에 앉아 있는 직장 동료들과 은밀한 눈짓을 주고받았고, 그들은 나를 사무실에 남겨놓은 뒤 아침을 사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휴직을 신청을 하기 전, 실무자로서 같은 팀에서 일을 하는 직원 3명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다들 다른 부서에 있을 때부터 알던 사이이고, 내 또래 친구 같은 직원들이었으며, 지난 2년간 같은 팀에서 못볼꼴 다 보며 동고동락한 사이의 직원도 있었지만, 어쨌든 회사는 회사니까. 휴직을 한다고 그들에게 말을 꺼내는 것은 미안하고, 송구스러웠다.


"제일 힘든 건 너일 텐데. 걱정하지 마."


라는 위로 섞인 답변을 듣는 순간, 속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고마웠다.


그리하여 약속의 8시가 되었고, 진단서를 들고 직속 상사의 방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이러이러한 사유로 휴직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직속 상사는 토끼눈을 뜨며 나를 쳐다봤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진 뒤, 갑자기 첫째 딸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상사에게는 이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첫째 딸이 있는데, 중학생 때 머리에서 뇌종양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공부도 잘하던 아이였고, 자기도 공부 욕심이 있는 터라 건강이 우려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고, 그런데 평소에 머리가 아프다고 자주 말하곤 했고, 어떻게 하다 보니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세상에, 뇌에 있는 혈관에 종양이 있어서 혈관이 막혀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에게 평소에 다른 증상이 없었냐면서, 첫째 딸은 굉장히 예민했고, 머리에 두통을 달고 살았으며, 평소에 이명도 들렸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기는 부모이면서 그런 걸 알지도 못했다고 하셨고, 전화로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돌이켜보니, 나도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고(남편 피셜), 평소에 약간만 신경을 쓰면 두통이 심하게 와서 진통제를 달고 살았었다. 이명이 들린지도 꽤 오래됐었고. 다만,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비교를 할 수 없으니 그 정도의 심각성을 몰랐던 것이었다. 그저 머리가 아프니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이명이 들리니 아 귀도 피로한 건가. 이렇게 생각했을 뿐, 어떻게 보면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전조증상을 미처 모르고 지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상사는 첫째 딸 이야기를 마무리하시고는, 

휴직하는 기간 동안 몸 잘 챙기고 그렇게 위험한 병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특히 부모님께는 놀라시지 않게 잘 말씀드리고, 종종 맛있는 것 먹을 때 부를 테니 놀러 오고 부디 건강하게 돌아오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의외였다. 워커홀릭 상사가 일터를 떠나는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섣부른 걱정이었다.


그렇게 오전 중으로 관련부서에 휴직에 관한 서류를 제출하였고, 내 휴직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진단서에 뇌에 몇 미리의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적혀있는 걸 보니 다들 놀라신 듯하였다. 


그래서 얼떨결에 휴직 신청일이 나의 마지막 출근일이 되었다.


짐을 챙겨 나오면서 뒤돌아 회사 건물을 바라보고는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하고 마치 퇴사하는 사람처럼 인사를 건넸다.


약물 치료를 하다가, 시험관 시술로 임신이 된다면 최소 2-3년은 돌아오지 않을 나의 직장이었다. 8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막상 떠날 때가 되니 그동안 동료들과 행복했던 기억만 떠오르는 것이 나 정말 여기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소속은 있지만 월급과는 안녕을 고한, 반 백수가 되었다.


휴직기간 동안, 병이 있다고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 삶 속에서 수많은 의미와 낭만을 찾을 것이고, 그 안에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것이다.

인생 한 페이지에 적힐 '작은' 고난을 이번에도 보란 듯이 이겨낼 것이다. 

그만큼 나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고, 지금까지 모든 고난을 넘어서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스물아홉, 내 머리에 뭐가 있다고요?'의 마지막 편입니다. 뇌종양을 확인했을 때부터 휴직을 신청하기까지의 짧은 과정을 글로 써보았습니다. 1-2편은 제 브런치 혹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하루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스물아홉, 내 머리에 뭐가 있다고요? (brunch.co.kr)


스물아홉, 내 머리에 뭐가 있다고요? 2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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