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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Apr 20. 2022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말이 가지는 힘, 그리고 나 자신.

때로는 지금 겪고 있는 감정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끝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주로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우울할 때와 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이와 같은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더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누군가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죽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물 밑으로 푹 잠겼다가 어느 순간 바닥을 찍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중학생 시절, Lanta Wilson Smith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는 시를 배운 적이 있다.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직 세상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였지만, 이 시를 읽고 '뭔지 모르겠지만 써먹을 데가 있겠군.'라는 생각을 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 구절을 써먹을 상황이 생겼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아버지의 가게 이전으로 인하여 시골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 간 학교에 대하여 간단히 써보자면 한 학년이 200명 남짓되는 작은 학교였고,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특히 학년마다 부장 선생님이 한 명씩 있었는데, 당시 부장 선생님은 우리가 3학년이 될 때까지 3년간 함께 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문제는 거기 있었다. 뭐, 그 사람의 찬양론자가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 때문에 고등학교 내내 끔찍하게 괴로워했었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지나치게 많이 보는 성격으로 변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졸업한 그 학교를 모교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고, 지나가다가 쳐다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당사자인 나는 무수히 많은 기억이 있지만, 내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를 몇 가지를 꺼내본다면, 


내가 전학을 가기도 전에 수업에 들어가서 '도시에서 전학 오는 얘가 있는데, 농어촌 전형을 노리고 오는 게 분명하다.'라고 가십거리처럼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 처음에는 몰랐지만 1년 정도 있다가 친한 친구에게 전해 들은 내용이다. 사교육을 받은 적도, 대학에 큰 뜻도 없었기 때문에 입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고, 당연히 농어촌 전형이란 게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는 전학을 오기 전부터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아이들에게 심어놓았고, 어이없었던 점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기 때문에 그 전형을 사용할 자격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그가 입시를 몇 년이나 했는데, 그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를 모르는 다른 반 아이들에게 나는 '선생님이 말하던 걔'가 되었고, 다른 반 친구들과 친했던 우리 반 친구들이 나에게 전달해주는 그의 언행들은, '우리 반을 빼놓고는 나를 안 좋게 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고, 교실 밖을 돌아다니는 일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머리를 자르고 등교했는데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얘가 나에게 "아 존x 안 어울려" 하고 지나갔던 일도 있었다. 아직도 그 얘의 얼굴과 표정과 입모양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슬슬 부모님들이 학교로 찾아와 상담을 받고 입시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자, "1학년 때 관심도 없던 부모들이 2학년 때 돼서 관심을 가지는데 그걸 누가 도와주고 싶겠냐."라고 수업시간에 대놓고 말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은 그 무렵 누구누구의 부모님이 와서 상담을 받고 갔는지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 아직도 내 인생 최악의 순간 Best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건은,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준비 시즌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는 청소시간에 나를 교무실로 부르더니 고려 대학교에 원서를 넣어보자고 했었고, 당시 꿈이 있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학과가 확고했던 나는 이 직업을 하기 위해서 xx 대학교에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더니, 정확히 이런 워딩으로 나에게 말했다. 


"니가 그 직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냐?"


뒤에 더 충격적인 말이 있긴 한데, 생각만 하면 아직도 열불이 나서 기록하지는 않겠다. 당시 다른 선생님들과 청소하던 아이들 앞에서 그 말을 들은 나는 그 상황이 굉장히 수치스러웠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으며, 거대한 권력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그 상황이 너무너무 절망적이었다. 그 상태로 복도로 나와 걷고 있는데, 지금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그 당시 유일한 내 편이셨던 담임선생님께서 지나가셨고, 선생님을 붙잡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당시 학교에서 대학을 잘 보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성적이 괜찮았던 나를 이용해서 자신의 입시 커리어를 쌓고 싶었지만 그의 말을 듣지 않으니 그런 식으로 행동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가, "나는 그때 그 선생님이 말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아서 많이 좋아했는데, 지금 와서 너에게 했던 행동을 생각해보니 정말 별로인 사람이었어. 꿈이 있는 얘한테, 아무리 서울대여도 간호학과를 가라고 하질 않나. 그때는 그걸 싫어하는 네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지금 보니 그 사람은 선생님이지만 자신보다 한참을 어린 얘한테 기싸움을 하면서, 너한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자기의 입시 결과만을 위해서."라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열아홉의 내가 위로받고 웃음 짓는 모습이 잠시나마 머릿속에 그려졌고, 그 당시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반장인 나를 두고 우리 부모님이 학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왈가왈부했던 것. 그 당시 나는 어린 마음에, 부모님께 그 말을 그대로 전하여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적도 있었다. 그땐 몰랐었다. 학교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웃으며 나에게 "너무 그 말에 마음 쓰지 말고, 네가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라고 하셨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통탄할 일이었다.


나의 고등학교 2년 반을 돌이켜보면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공고한 캐슬에서 살아남았고, 그가 하지 못할 거라 했던 그 직업을 가지고 보란 듯이 '잘' 살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그 일련의 시간들도 "와 그땐 진짜 최악이었지. 뭐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무서워했는지. 그 사람 때문에 울고 화냈던 시간이 아깝다. 참."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그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것' 덕분이었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고통을 꺼내놓지 않고 다 끌어안으며 밤마다 소리 없이 울었던 시간들, 그 당시 감정의 벼랑 끝에서 위태위태했던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바로 '말의 힘'이었다.


상처 주는 말에 상처받고 무너질 때마다 매번 입으로 "버텨야 한다. 버텨야 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수천번 반복했던 말들, 나의 작은 메모장에 적어 놓은 힘든 시간을 견디는 방법에 대해서 적은 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수험생활을 이겨낸 사람들의 글, 힘듦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수많은 글들이었다.


우리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 필요한 것, 누군가의 포옹이나 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다잡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고, 그 방법 중에서 제일 쉬우면서도 강력한 효과를 가진 것은 '말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최근에 유행하는 말이 있다. 두렵지만 하고 싶을 때 "가보자고!"라고 말하는 것, 그렇게 도전하다가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오히려 좋아."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 사람들은 이 말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단어'라고 부른다.


"버텨보자." 했던 말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했던 말은 나에게 노력하는 힘을 주고 내 꿈을 이루게 해 주었으며,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했던 말은, 아직까지도 소용돌이에 빠지는 나를 매번 지켜내 주고 있는 말이다.


사람들마다 '마법의 단어'는 다 다르다. 하지만 그것을 어렵게 찾을 필요는 없고, 평소에 읽거나 들었던 수많은 말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말을 하나 고르면 된다. 오글거려도 상관없고, 그게 욕이어도 상관없다. 그저 툭툭 털고 일어날 계기를 나에게 주면 되니까.


그리고 슬픔에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질 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을 때, 삶이 힘들어서 벼랑 끝까지 몰려있는 기분일 때, 바로 그 '마법의 단어'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된다.


그리고 반복하는 것도 지쳐 아무 생각과 감정이 없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감정의 밑바닥이라고 생각하고 바닥을 찍고 힘을 내서 수면 위로 올라가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살아가면 된다. 


잊지 말자.

뭐든지 영원한 고통, 영원한 슬픔, 영원한 분노는 없다.


모든 순간은 지나가게 되어있고, 

나에게 생긴 상처 중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으며,

감정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을 뿐이다.


오늘도 순간의 감정에 지지 않고 이겨내는 

나 자신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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