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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Sep 17. 2022

역지사지라고????

무개념 벤츠 주차와 참 교육, 그 후의 기사를 보다가.

나는 단독주택에 산다

 이곳은 내가 약 11년 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왔을 때 어머니 명의로 구입하여 살게 된 곳이다. 우리 집을 비롯한 이 주변이 모두 비슷한 크기와 평수이며 2층 양옥으로 된 단독주택 단지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1층은 집주인이 살고 2층은 세를 주거나 자식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대부분 오래 산 이웃인 것이다. 나도  10여 년 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든 이웃 사람들이 익숙한 나름의 고향이기도 하다.  재작년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고 그때 이 집을 팔아서 병원비에 보태려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주택생활을 정리하려고 했었으나 집이 팔리기도 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상속받은 정든 이 집을 결국 버리지 못해 다시 수리해서(10년이 넘었으니 내부 인테리어가 필요했다.) 최근 다시 돌아왔다.

이웃도 그대로였다. 반가워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고작 1년 정도 바로 옆 아파트에 살다 왔을 뿐인데, 아이 학군이 그대로 일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도 새삼스럽게 전보다 더 이 동네와 이 집이  좋았다.





모든 이웃이 그대로였는데, 딱 한집이 새로운 얼굴이었다. 바로 옆집 2층에 살던 중년부부가 이사를 가고 젊은 부부가 이사를 들어왔다. 이 부부를 눈여겨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로 옆집 2층에서 우리 집이 내려다보는 구조이고 우리 집 2층에서는 마주 보는 구조이다 보니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파란색 고급 세단을 몰고 다니는 게 여간해서는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차는 빨간 소형차다 보니 나란히 주차된 차를 보면 파랑, 빨강 자동차가 정말 눈에 확 띄었다.

그럼에도 이 젊은 부부는 뭔가 처음 봤을 때부터 위화감 같은 게 있었다.

일단 아무도 아침에 출근을 안 하고 남들이 출근할 때 나와서 담배를 피웠다. 재택근무 같은 거겠거니 하면서도 뭔가 기묘했다. 팔과 등에 문신이 있고 사람을 정면으로 보기 않고 흘깃흘깃 보기도 했고 집 안에서 음악소리를 엄청나게 크게 아침부터 밤까지 틀어두는 날도 자주이었다. 아무튼 이런 일련의 행동들로 이미 나는 이 부부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리는 저녁 무렵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 차번호를 부르며 이 차의 차주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차를 좀 빼 달라고.

나는 내 집 앞에 정확하게 주차를 했기 때문에 의아한 마음이 들어서 왜 차를 빼야 하는지 묻자

선생님께서 차를 이. 상. 하. 게 주차해서 본인이 주차할 수 없으니 차를 좀 뒤로 좀 빼 달라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주택가는 통상 집 앞 이면도로 한쪽에 주차를 한다. 주차라인도 없고 지정주차도 아니지만 보통 본인 집 근처에 차례차례 주차를 하는데 차종이 모두 다르다 보니(트럭, 경차, 세단 등등 다양함.) 자리가 애매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보편적으로는 그럴 때는 다른 곳에 주차를 한다. 살면서  내가 이상하게 주차해서 주차를 못한다는 말도, 그러니 지금 나와서 차를 빼 달라는 전화도 처음이었다.

그런 식의 전화가 매우 불쾌했다. 나는 일단 전화를 받으며 대문 앞에 나갔는데 옆집 2층의 그 남편이었다. 내 차인 걸 알고 전화했다는 생각이 들자 더 불쾌해졌다. 나는 "이런 경우 보통 전화를 하나요? 다른 곳에 주차하지 않나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항변하면서도 차를 조금 뒤로 이동해서 파란색 세단이 주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창문을 내리고 옆집 남편은 감사합니다~라고 껄렁하게(나는 그렇게 들렸다.) 소리쳤다. 뒷좌석에서 아이와 부인이 내리는 걸 보면서 비가 왔고, 아이가 있어서 그랬나 보다고 내가 나에게 납득을 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날의 날씨 탓인지, 그 부부의 첫인상 때문이었는지 이상하게 주차했다는 그 말을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마치 본인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말로 들려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고, 기분이 나빠졌고 그 기분 나쁨이 불쾌함으로 불쾌함이 불안함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차라리 처음부터 비도 오고 아이도 있어서 그런다, 옆집인데 혹시 차를 조금 뒤로 빼주실 수 있는지 를 물었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이고 웃으며 빼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투와 어감이 너무 불쾌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자 남편은 그 집 좀 상식이 우리랑은 다른 것 같다고 느꼈는데, 진짜 특이하다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나는 웃어넘겨지지 않았다.

내가 주차할 때마다 계속 전화하면 어쩌지? 차 안 빼주면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문신도 있던데 깡패면 어떡하지? 등등 잠을 못 이룰 만큼 무서워졌다. 내 망상 속에서 옆집은 너무나 두려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며칠 뒤, 4살쯤 되는 딸아이와 옆집 남편 그리고 그 집주인 할머니가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주인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며 아이와 아이 아빠를 정면으로 마주 봤다. 아이를 봐서 인지 조금은 무서움이 누그러들었고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조금은 안심했다.

그 후 내 상상처럼 주차문제로 전화하는 일은 없었고 나와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는 일도 당연히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사람은 주차를 굉장히 튀어나오게 해서 통행 시 긴장하게 하고(아마도 아이가 차 문 열 때 닿지 않게 하려는 듯) 음악을 아주 크게 틀고 매일 나와서 담배를 피우지만 적어도 직접적으로 우리 집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문제는 창문을 닫으면 모두 해결되는 일이라 크게 신경 쓰이진 않지만 이따금씩 독특하다는 생각은 한다. 고급 세단을 타지만 출퇴근하지 않는 사람. 차를 매우 아끼는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젊은 사람. 나와는 결이 절대 안 맞을 것 같은 이웃사람. 그렇게 잊혀 갔다.

별일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차나 남편 차 근처에 그 차가 보이면 여전히 그 불쾌감에 사로잡히고 두근거린다. 같은 색깔은 아니어도 비슷한 차종을 봐도 그때의 기분이 떠오른다. 이렇게 적다 보니 진짜 별일도 없었는데도 나는 기분 나쁜 두근거림을 느낀다.


그런데,

주차문제라는 게 비단 주택가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은 일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얼마 전 뉴스에 무개념 벤츠 주차 기사를 봤다. 주차라인이 아닌 곳에 그것도 가로로 여러 칸을 점령한 벤츠. 

그런 일이 자주 있자 주민들이 차의 앞, 뒤로 정확히 주차하여 소위 참 교육을 했다는 기사도 봤다. 참 교육이라는 말이 딱이라고 생각했고, 본인이 불편해 봤으니 반성했을 줄 알았는데......

 오늘 기사에 그 차주가 참 교육한 그들을 고소했다는 기사를 봤다. 거주하는 아파트도 아닌 남의 아파트에 주차를 가로로 해서 여러 주차란을 차지했던 차주, 본인이 불편한 건 못 참는 차주. 그 차주가 해당 일로 고소를 진행하며 쓴 글을 보다가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다.



곱씹어 읽다가 문득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요즘은 본인과 차를 이렇게나 아끼는구나, 차를 모시고 개념과 인성 아니 최소한의 예의도 부끄럼도 모르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사람은 참 당당하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끼며 마음이 또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물론 밴츠 차주와 우리의 이웃은 다르지만! 왜 자꾸 나는 같은 선상처럼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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