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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Sep 14. 2022

내가 싫어하는 나를 봤어.

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언젠가,
누군가에 나의 나약함과 두려움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온다면 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언제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꽁꽁 싸메두고 드러내지 않았던 나약함 들을 드러내고 나 스스로를 위해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그땐 그 두려움과 나약함 마저 벗어난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현실에서 많은 부분을 벗어나 사는 사람을 보면 늘 안타깝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왜 일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은 건 왜 일까? 당사자는 행복하다고 하는데도 믿을 수 없는 건 왜 일까?

그 사람의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 건 내가 그렇게 될 수 없는 질투심과 치졸한 마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하고 무언가를 더 얻고 성취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혹은, 강요받는 삶에 지친 주제에 그런 것들을 다 끌어안고 살려고 버둥거리며 힘들어하는 주제에.

 누구를 안쓰러워하고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기며 충고하려 한다는 말인가?

 그런 현실적인 것들에서 과감히 비켜서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강하고 행복한 사람인지 나같이 비겁한 인간은 진심으로 느껴보지 못할 행복을 누릴 텐데  어째서 그런 사람을 내멋데로 판단하고 있단 말인가?


 시선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현실적인 많은 것들을 놓아 버리고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인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아니 나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면서 아니라고 부정한다.

지금 보다는 지금 나의 상황에 맞게 살고 지금의 행복보다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명목 하에 많은 부분의 행복내면의 소리를 외면하고 살면서 미래의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정했고 그래서 일한다. 눈에 보이는 자산이 지금보다 더 아져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지금 이대로면 충분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 주제에.....

어째서 지금도 자유로운 행복을 바라는 걸까?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지 않고  살면서 현실이 슬프다고, 지쳤다고 칭얼거리는 걸까?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용감하게, 온전히 나를 바라보게 될 수 있는 건지, 그런 때가 오기는 할지.

마흔을 목전에 둔 나는 여전히 십 대처럼 불안정하다.

나이가, 세월이 나를 용감하게 만들지 못했음이 오히려 점점 더 비겁하게 함을.

내가 싫은 나를 나는 아직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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