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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Sep 20. 2022

브런치에는 뭘 쓰는 거니?

기록하고 싶은 건지, 창작하고 싶은 건지.


본격적으로 무언가 써야지 생각하다가
 나는 왜 자꾸 무언가를 쓰고 싶어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봤다.


나는 늘 불안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불안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내입으로 말하기 전까지 내가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잘 숨기고 사는 불안한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별것 아닌 일에도 심하게 걱정을 한다.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상상하며 무서워하고 무서움을 극복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툭,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아무 감정 없었던 것처럼 말하면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는 그대로 <별것 아닌 일>로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사소한 일상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나이가 되고 나 역시 불안함 속에도 해야 할 들이 늘어나다 보니 대화 상대 자체가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래서 너무 불안감이 심할 때, 있었던 일들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대로 차분히 적다 보면 불안한 마음이 누그러지고 적어둔 글을 읽다 보면 정말 <별것 아닌 일>로 보이는 게 신기했다. 일을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말로 하면 물론 더 잘할 수 있겠지만, 혼자서 내가 내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

내가 무언가를 쓰는 목적은 자가 치유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것도 누구에게 피해받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은 최대한 하지 않고 살며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

규칙데로 정한 데로 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요령껏, 적당히 가 잘 안 되는 성격이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성격이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편이다.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사소한 규칙들 웃으며 어기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하고 가끔은 불쾌하다. 그런데 그런 게 사람 사는 거라고 웃어넘기는 다수의 사람을 보다 보면


'그래... 과연 나는
 모든 걸 다 지키며 살고 있나'


라는 생각에 빠지면서 마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인생을 팍팍하게 사는 것처럼 고리타분한 사람처럼 느껴져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세상 모든 일을 뉴얼 데로 살 수 없지만, 막상 큰일이 생겼을 때 잘못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정해놓은 매뉴얼 아니던가? 그러니 사소한 규칙이라도 지키면서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사는 삶이 참 고단하다.

결과적으로 나는 큰 피해를 입어본 적도 없고 큰 사건에 휘말린 적도 없으니 내가 피곤한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그래도, 나는 내가 맞다는 확신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래야 지금의 생활을 지금의 나를 유지하고 버텨 나갈 수 있기에. 내가 혼란스러울 때도 무언가 끄적이곤 했다.



이런 나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미묘하게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작은 규칙을 무시하곤 한다. 그러지 말라고 지적하는 나를 기분 나빠하지 않으며 그러지 않겠다고 늘 대답은 하지만 별로 지켜지지는 않는다. 이 성향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지만 육아에 있어서 많이 부딪혔던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기의 카시트 문제.(지금은 다 컸으니 맘 놓고 털어놓는 그 문제)

나는 아무리 짧은 거리도 카시트에 앉혀야 편안한데 남편은 가까운 곳은 괜찮다며 그냥 아이를 안고 탈 때, 특히 아이를 안고 앞 좌석에 탈 때면 너무 위험한 행동이라고 말해도 남편은 알겠다고 할 뿐 그렇게 심각하게 듣지는 않았다.

나는 늘 '만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편은 늘 '지금의 편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잠깐 동안에 사고 날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이를 울리면서 짧은 거리를 카시트에 태우느라 고생을 하느냐 하면, 결국 다 괜찮지 않았느냐라고 하면 세상에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 맞는데 나는 그게 너무 불편한 거다. 물론 남편도 고속도로나 장거리는 당연히 카시트에 앉혀서 이동했지만 난 이 '잠깐'을 괜찮게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사소하게 부딪히고 다툼이 생겨 남편이 이해되지 않을 때 친구나 지인에게 남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하소연처럼 이야기해봤지만, 내 얼굴에 침 뱉기 라는걸 깨닫고 보니 굳이 아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이렇게 글을 적어 분풀이를 하는 거다. 그런 행동 나쁘거라고 하지 말라고. 아는 사람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답답한 내 마을을 외치는 대나무 숲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는 무언가를 쓰는 직업을 갖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따분하고 자기중심적인 이런 이야기. 나는 이런 류의 글을 굳이 왜 쓰는가 싶을 이야기뿐이니까.

그래도 써보고 싶다. 이렇게 일기장에 쓸 법한 글만 쓰다가 언젠가 진짜 내가 쓰고 싶은걸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게 어쩌면 진짜 내가  쓰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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