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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Sep 29. 2022

4부작/일주일 전 , 마지막 이야기

결국 사과는 내가 한다.

아내가 화가 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날 아들의 태도가 나는 몹시 화가 나서 화를 냈다.

딸애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요즘 아들의 예의 없음이 너무 싫다. 그런데 아내는 늘 아들만 감싸고돈다. 예의 없는 걸 오냐오냐 하는 게 더 싫어서 방에 들어왔는데 기어이 따라 들어와 내가 잘못한 거라며 한마디 보탠다. 말도 섞고 싶지 않아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니 나가라고 했다. 아내는 한숨을 쉬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지친다. 왜 아들을 오냐오냐 하는 건지. 그럴 때 아들이 날 어떻게 볼지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이 집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자존심이 상했다. 다음날 역시나 아내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이들 등교 준비에 여념이 없다. 기가 막힌다.  나는 또 입을 닫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지. 화가 치민다.


아내는 늘 이런 식이다. 내 기분은 상관없다. 언제나 본인과 아이들 중심이다. 한 번이라도 내편을 들어준다면 좋겠는데.. 나는 소외되어 있다.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이 즐겁지 않다. 즐겁기는커녕 가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 10시가 넘도록 있다가 최대한 먼길로 빙빙 돌고 있는데 톡이 온다. 

오빤 싸우면 늘 늦더라. 왜 안 와?
들어갈 거야.
오겠지 그래 언젠가는

 카톡마저도 화가 나 있다. 내가 화를 내면 아내는 더 크게 화를 낸다. 나는 늘 아내를 생각하는데 아내는 불만이 많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은 오직 너를 위함이라고, 나는 아이보다 네가 중요해라고 말해도 아내는 듣지 않는다. 싸우면 아내는 끝날 사이처럼 군다. 연애 때도 그랬고 결혼해도 바뀌지 않았다. 언제나 사과는 내가 했다. 내가 사과해야 이 상황이 끝났다. 아내는 한 번도 져준 적 없다. 그런데도 본인이 희생한 게 많고 본인의 인생이 억울하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고 경력을 잃게 된 그 시점부터 이야기는 시작되고 끝난 것 같은 결혼 초기의 일들을 줄줄이 읊어데며 우린 원래 안 되는 거였다고, 그만두자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싸움은 곧 이별이라고 생각하는 저 사고방식이 나는 참 마음에 안 든다. 얼마나 본인이 냉정한지 아내는 모른다. 그런데도 늘 내가 무심하고 성의 없다고 한다. 외롭다고 한다. 나는? 나도 외로운데. 아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열심히 일했다. 퇴근 후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아내가 육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힘썼다. 워낙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우리라 크게 호강은 못 시켰어도 때마다 먹고 입는 것이 부족하지 않도록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독박 육아를 말하는 아내가 안쓰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은가? 왜 자꾸 그 시절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지는 건지, 지금도 모든 싸움은 끝에 그때 이야기를 꺼내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아니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는가? 가정에 충실했다. 친구도 안 만나고 술도 안 마신다. 스트레스 주는 시댁도 없다. 남매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누가 봐도 행복한 가정, 힘들 것 없는 인생인데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날이서 있다. 사서 힘들어한다.  나는 그런 아내가 화도 나고 안타깝다. 왜 지난 시절에 갇혀서 지금을 행복해하지 못하는 걸까? 


결국 이번에도 내가 졌다. 아내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카페로 데려갔다. 음료가 나오자마자 아내는 내가 잘못한 것부터 쏟아낸다. 그날의 내가 아이에게 상처 준 것을, 어른답지 못했던 것을 그로 인해 사춘기 아들이 상처받고 밥 먹던 딸아이가 놀란 것은 말한다. 아내는 사는 동안 서로 편안하지 않으면 같이 사는 의미가 없다고 한다. 내 태도를 고치라고 말한다.

나도 할 말이 많았지만 결국 나는 입을 다물고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사과하는 것이 진정성이 없다고 했다. 결국 또 바뀌는 것 없이 그대로 살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왜 늘 나만 고쳐야 해? 나만 늘 잘못된 거야?

그리고는 뭔가 말하려는 아내를 막으며 이제 잘해보겠다고, 아들과도 잘 풀겠다고 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내가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니까, 계속 이렇게 아내와 대화 한마디 없이 사는 것은 너무 힘드니까. 이 상황이 너무 숨 막히니까 내가 희생하기로 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는가? 나는 아내와 끝낼 마음이 없는데. 그러니 지고 살 수밖에 없다. 일주일하고 하루 만에 아내의 웃는 모습을 봤다. 아내는 내가 너무 무심하다고 성의 없다고 끝까지 한마디를 보탰지만, 나는 또 미안하다고 했다. 더 잘해보겠노라 말했다.

그러면 됐지 싶다. 이런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나는 져주는 사람이니까 그걸로 됐다고 혼자 나를 위로했다. 가슴속 공허함이 번져갔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좀 더 져주고 싶다.


소설 같은 이야기, 알 수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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