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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공간(Personal Space)

50년 전과의 비교 - 또 하나의 라떼는 말이야

by 북한강


환갑이 지난 이 나이에 돌이켜 보면 제가 어렴풋이라도 기억이 남아있는 과거는 아마도 지난 50년 정도일 것입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우리 4남매가 외양간과 광이 딸리고 마루를 마주보고 있는 방 두 칸짜리 전형적인 시골집에 살았습니다. 훗날 기와를 올렸던 기역 자의 방 두 칸짜리 초가집에는 아이든 어른이든 개인 공간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중학교를 가고 나서야 제대로 된 책상이 생겼지만 그마저도 방 한구석이나 대청마루 한편에 놓여있던 관계로 사춘기 소년의 '나만의 공간' 따위의 호사를 부릴 여유는 애초에 기대하지 못하던 시절입니다.


혼자서 쓰는 저만의 공간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개인 공간' 따위가 존재할리 만무했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 자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생활방식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제 유년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보며 개인 공간이란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초가집에서 아파트까지

나의 유년 시절인 1970년대에는 모든 게 단순했습니다. 초가집 안에는 안방과 건넌방이 마주 보고 자리해 있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마루 하나 그리고 각각의 방에 붙은 부엌, 그리고 작은 마당이 전부였죠. 물론 농기구를 넣어두는 광(창고) 하나와 대문을 마주 보고 있는 외양간과 나무를 쌓아두는 또 다른 광도 별도의 건물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이 달랑 두 개였던 이유로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자고, 먹고, 지내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가족들은 각 방에 나뉘어 여럿이 함께 잠을 잤고, 덕분에 프라이버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가족끼리의 유대는 아주 강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일상은 공동체와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개인 공간에 대한 개념 자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8명의 가족 구성원들은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았습니다.


이후의 변화: 서울에서 만난 개인 공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나아지면서 농촌 지역에서도 삶의 질이 개선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 새로운 삶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태어난 고향에서 중학교에 진학을 하고 나서도 2년쯤을 더 다니다가 부모님이 서울로 유학을 보내 주시는 바람에 서울에 사시는 친척 집에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전히 우리 집이나 마을 전체가 모두가 함께 어울리며 지내던 문화였지만 서울로 올라와 친척 동생과 방을 함께 쓰면서 점점 개인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머물던 친척 집도 여전히 기역 자 형태의 한옥집이었는데 사랑채 형식의 방 두 개가 더 있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저와 친척 동생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서울로 유학 오기 전보다는 환경이 나아졌지만 '개인 공간'이 생겼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네 식구가 쓰던 방을 둘이서 쓰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때까지도 방 하나를 오롯이 혼자 쓴다는 것은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바로 옆집에 사는 같은 반 친구의 집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놀랍게도' 자기의 방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혼자서 방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나와는 다르다는 이질감과 함께 묘한 질투심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친구에게 허락된 개인 공간에 대한 부러움의 발로가 아녔을까 생각합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 친척 집을 떠나 자취를 하기까지 저는 여전히 개인 공간이 허락되지 않은 곳에 살았습니다. 대학에 진학을 하고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왔지만 방을 혼자 차지하는 호사는 누릴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같은 방에서 부대끼며 정을 나누었으니 감사할 일이고 아쉬움이 남을 일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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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활: 개인 공간은 필수

이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파트나 오피스텔, 그리고 다양한 주거 형태에서 보냅니다. 각각의 방을 가진 주거 공간과 개개인의 생활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서재라고 부를만한 저의 "물리적인" 개인 공간이 생겼습니다. 물리적인 개인 공간이 조금씩 또 다른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개인 공간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공간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과거 초가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라디오 연속극에 귀울 기울이던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각자가 자신의 디지털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같은 물리적인 공간에 있으나 디지털 공간 안에서 자기만의 독립성이 보장된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공간은 부모나 자식, 그리고 때론 부부간에도 넘볼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함께 있으나 함께 있지 않은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h_j8dUd018svc7moi6bjav196_stbvh8.jpg?type=w966 Sunlight in a Cafeteria - 에드워드 호퍼


개인 공간이 생겨서 과연 전보다 더 행복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개인의 고독과 소외감이 커진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Sunlight in a Cafeteria"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잘 보여주는 작품 같습니다. 저 두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거리감과 단절이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기분일까요?


과거의 공동체 생활과 현재의 개인 공간 중심의 생활은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족 간의 유대와 공동체적 지원이 주된 가치였다면, 지금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율성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변했어도 가족의 소중함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다만, 그 소중함을 지키는 방식은 달라졌을 뿐이다'라고 우아한 결론을 맺고 싶으나 확신을 가지고 결론을 내릴 수 없네요. 그저 변화된 환경과 소통 방식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키는 신뢰와 사랑은 여전하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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