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이 날 붙잡아 주던 날,
어떤 말은 길게 남는다.
짧게 스쳐간 듯해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오래 머무른다.
그날의 나는, 그 작은 자리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숨이 가빴다.
씻고, 옷을 챙겨 입고, 대충 머리를 묶는 사이
시계 초침은 재촉하듯 움직였다.
출근길 발걸음은 빨랐지만, 마음은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며칠째 식욕이 사라져, 하루를 버티는 건 거의 물과 커피뿐이었다.
몸은 점점 가벼워졌지만, 그건 건강한 변화가 아니라 기력이 빠져나가는 신호였다.
사무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스쳤다.
책상 위에는 어제 처리하지 못한 서류가 그대로 쌓여 있었고, 전화벨은 쉬지 않고 울렸다.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짧은 웃음소리가 뒤섞여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컴퓨터를 켰다.
누구도 내 표정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나 역시 시선을 줄 여유가 없었다.
점심이 가까워올 무렵, 손끝이 시릴 만큼 피로가 몰려왔다.
어깨는 돌덩이처럼 뭉쳐 있었고, 목 뒤로는 뜨거운 열이 올랐다.
머릿속은 해야 할 일과 밀려드는 생각들,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하루로 복잡했다.
나는 나에게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늘 외톨이인 줄 알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게추가 가슴속에 매달린 듯,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폐까지 공기가 닿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때, 내 앞에서 서류를 건네던 사람이 잠시 멈추더니 말했다.
“무리하지 마, 여태껏 실수 없이 잘해왔잖아.”
짧고 평범한 말이었다.
그 순간,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머릿속이 잠시 멍해지고, 손끝이 따뜻해지는 듯하다가
곧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풀렸다.
목 뒤의 열이 서서히 내려오고, 숨이 조금은 깊어졌다.
그 말 안에는 형식이 아닌 진심이 있었다.
겉으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오래 눌러두었던 눈물이 고여 오르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해결해 주는 말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숨이 트이는 걸까.
아마도 그 한마디에는 ‘당신을 보고 있다’는 시선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내 자리가 있구나.
누군가는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주고 있었구나.
그날 이후, 나도 가끔 짧은 말을 꺼내본다.
마치 작은 촛불을 건네듯,
누군가의 어둠 속에 은은히 빛이 닿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