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 경계선 무너뜨리기.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기본적으로 우리는 경계심을 갖는다. 이 사람이 나와 비슷한 류의 사람일까? 나와 소통 가능한 사람일까? 나를 이용할 사람은 아닐까? 믿어도 될까? 가까이 지내도 괜찮을까? 수많은 생각을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인지하며 우리는 사람을 스쳐가기도, 머물기도 한다.
특히, 직장이라는 공간은 그러한 경계심이 더욱 증폭되는 곳이다. 지속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지내지만 속내를 알기 쉽지 않으며,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생각이나 인식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기에 최근의 어느 순간부터 나 또한 그 경계심을 늦추면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하루 하루를 보내왔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푸코나 데리다의 철학처럼 경계를 권력이 만들어내는 장치로 인식할 경우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조직으로서 직장은 경계를 강화시킨다. 직위와 라인이 형성된 어느 조직이든 경계는 권력의 구조와 연결되며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될 수 있다. 내가 어느순간부터라고 시점을 정한 이유도, 직장 내에서 누군가 경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경계는 형성되었고, 보이지 않는 그 경계가 서로를 나누고 서로를 구별짓고, 서로를 더 이상 섞이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어 잠그게 한다.
경계는 사람이 만드는 인식적 구성물이다. 다를 거야. 같지 않을 거야. '아'하고 말해도 '어'하고 대답할거야. 그래서 나는 오해받을 거야. 상처가 될거야. 다가가지 않는 게 좋겠어. 나를 알리는 것이 약점이 되어 돌아올거야.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착각일 수도 있으나, 현실로 나타나 내 등에 비수를 꽂는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 조직 내에서 나는 울타리를 치고 빗장을 걸어잠그고 더 이상 아무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를 지우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허물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어제, 부서 회식을 했다. 여느때 같았으면 그냥 억지로 했을 회식이었다. 피상적인 말이 오가야 했고, 어쩌면 가면을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회식은 일부러 콜키지프리식당을 예약하였고, 일부러 와인을 사비로 사가기로 마음 먹었고, 일부러 나부터 나를 드러낼 각오를 하고 시작했다. 나의 그 용기를 나는 건방지게도 사랑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조직을 이끄는 힘은 물론, 자본(월급)일 것이다. 그러나 월급만으로 조직에 대한 긍정적인 직업 소양을 채울 수 없다. 내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감정적 자본 형성"을 나는 매우 유심히 살피고 있다. 조직을 긍정적 힘으로 이끄는 것은 자본이나 권력, 위계질서, 원칙, 시스템이겠으나, 그러한 조건들의 가장 밑에 감정적 자본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조직구조가 된다고 나는 이제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감정적 자본이란, 관계적 신뢰, 공감, 소속감, 상호 배려를 통해 축적하는 정서적 에너지와 긍정적 영향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밑바닥에 사람에 대한 신뢰와 상호 배려가 존재해야 그 위에 시스템도, 원칙도 의미 있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적 자본형성의 시작을 관계맺음, 빗장허물기, 회식 자리에서의 친근한 대화, 때로는 사적인 표현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이해하는 마음이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그렇게 실천해보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제의 회식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다. 나의 마음이 아니기에.
내가 좀 지나치게 나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나 혼자 취한 것은 아닌가 두려운 마음도 있다. 그러나, 이제 안다. 사람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신뢰 없이 관계는 형성되지 못함을.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나의 직장생활에 내가 더 힘들 것임을. 나는 이제 안다.
그래서 직장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또 상처받을 것이고, 또 배신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웃고 뒤에서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 일도 또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나의 가치가 절하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 자체로 의미 있으니, 나는 나 자체로 충분히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니.
이제 그 빗장을 허물고
어디에 머물던
사랑을 베풀며 지내겠다.
이 소중한 시간과 공간, 그 아름다운 존재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