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에 맞서는 우리의 지혜
1. 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말하는 진실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없는 사실, 참된 사실을 말한다. 과학의 발달을 통해 우리는 다수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증명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 불렀고, 그 증명이 가능하기에 인류는 그것에 저항하지 않았다. 이는 과학에서 그러했다. 인류가 과학을 믿기 시작한 역사도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과학적 근거에 힘입어 증명을 통해 누구나가 동일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사실이라 불렀고, 누구에게나 참되게 드러나는 것들을 우리는 진실이라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과학이 아닌 인간에 의하여 구성된 사회적 공간과 시간 속에서 진실은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회는 사람에 의해 구성된 시간과 공간이다. 사람 사이에 정해진 약속들로 이뤄진 공동체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 증명된 사실적 행위가 다른 이에게도 동일한 사실적 이해로 드러날 수 있을까? 현상에 대해 과학적 접근이 아닌 사회적 접근으로 관점을 가진다면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향유하더라도 인식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진실이란 무엇인가?
여러 학자들은 진실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가졌다고 한다. 첫째, 진실을 사실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학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진실은 정합성이다. 논리적으로 일관될 때 진실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셋째, 어떠한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고 유익하며, 삶에 도움이 되면 진실이 된다. 넷째, 해석학의 관점에서 진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관점이다. 다섯째, 진실은 은폐에서 벗어나 드러나는 것으로,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존재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실은 인간이 무엇을 주목하고, 무엇을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들 속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진실’은 절대적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인류가 만들고 구성한 사회 속에서 다수에 의해 규정되어진 집단적 패러다임 혹은 이데올로기, 그 시대를 규정짓는 거대한 메인스트림을 우리는 ‘진실’이라고 부르고 지향하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사회를 안정되게 지탱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실체 없는 믿음. 그것을 진실이라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 속에서의 생각은 알게 모르게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하여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마을에 애국가가 나오면 반드시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가슴에 올리고 노래를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애국가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진실이자 진리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애국가가 울린다해도 같은 행동을 할 아이는 없다. 그렇다면 진실이 무너진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과 변화가 진실을 변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변해가는 진실을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이 사회가 굳건히 지탱하여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Ⅱ
2. 설득이 필요한 사회
진실은 변화할 수 있는 사회의 거대한 흐름으로 규정할 때, 그 진실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각자 시공간의 인식 속에서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진실은 설득의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실은 진실로 받아들이고 사회의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에 대한 설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공동체 속에 놓여 있다. 개개인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며 각자의 욕망과 욕구 속에서 살아갈지언정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존속을 위하여 때로는 양보를, 배려를, 강력한 요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공동체가 개인을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공동체 자체를 위해서 존립할 수 있도록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시대, 산업 시대, 정보 시대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역사를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사람 속에, 공동체 속에, 나와 너 그리고 제3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공존의 공동체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탱할 거대한 흐름을 이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실이고, 그렇기에 그 진실을 이어가기 위하여 나는, 너를, 제3자를 끊임없이 설득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단 말로 채워지는 설득이 아닐지언정 비언어로, 몸짓으로, 행동으로 작은 날개짓으로 끊임없는 설득의 과정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설득은 때로 협박일 수도, 세뇌일 수도 있을지언정 말이다.
Ⅲ
3. 우리의 지향점
그렇다면 이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돌아가보자. “진실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정답은 그렇다이다. 첫째, 진실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기 위하여 사회 내에 존재하는 거대한 흐름이다. 둘째, 이 거대한 흐름은 사회를 지탱해야 한다. 셋째, 그래서 진실은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진실이 설득력을 잃게 되는 순간 진실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닌 것이 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진실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질문으로부터 더 나아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필자는 여기에 “지향점이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글을 맺고 싶다. 과연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그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으로 치면 자아실현 등의 꿈일 수 있고, 학교 교육으로 치면 학교 교육의 미래 비전, 한 국가로 치면 국가가 나아가야 할 미래 가치일 것이다. 정작 중요한 점은 진실이 설득력이 있는지를 넘어서는 우리는 무엇을 진실로 합의할 것인가일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가고자 하는 지향점은 무엇인가? 장 자크 루소가 말한 사회적 계약 속에서 계약은 억압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위한 합의여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가 공동체 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합의가 무엇인가? 우리 교육이 이루고자 하는 합의는 무엇인가? 그 해답이 “민주주의 교육”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진실로 규정하고 합의하여 거대한 큰 흐름과 실천을 만들어 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탐구를 통해 진실과 설득력에 대해 추후 더 고민하여 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