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자기혐오감, 찝찝함, 불쾌감

임신 후 잃어버린 것들

by 데이지

현재 임신 14주 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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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문과 상관이 없음)




임신 4주 차, 두 줄의 선을 확인하며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6주 차에 접어들자 선배 엄마들에게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입덧’이 찾아왔다. 입덧은 상상보다 훨씬 더 불쾌했고,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지옥과 같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를 정말로 무너뜨린 것은 따로 있었다.


입덧이라는 거대한 증상 아래 뭉뚱그려져 있던, 그러나 명백히 다른 결의 고통. 나는 그것을 '자기 혐오감'이라 부르기로 했다. 흥미로운 건, 초기 임신중 내가 겪은 자기혐오감, 내몸 찝찝함, 불쾌감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고, 배가 나오기 시작하는 임신 중기와 후기에 갈 수록 자기 혐오감이란 단어가 검색이 되었는데, 내 경우에는 배가 나오지 않는 초기 (임신 6주부터 임신 10주까지) 겪은 경험이기에, 살이찌고, 배가 나오는 중기와 후기의 자기혐오감과는 완전히 다른 결이라고 본다.




내 몸에 점령당하다: 통제권을 잃어버린 임신부의 비극



6주 차부터 시작된 변화는 가혹했다. 엄청난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아무리 잠을 자도, 내 안의 에너지는 항상 10프로만 채워져있었다. 전날 15시간을 자도 일어나면 내 몸 배터리는 10프로만 충전되 있었고, 아침에 화장실을 한번 갔다 오면 그 배터리가 다 감정되었다.

식욕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위장은 기능을 멈춘 듯 먹는 족족 거부 반응을 보였고, 소화 기능은 정상범위에서 딱 10프로만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 먹는 양의 반만 먹어도, 그것조차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신체적 고통보다 괴로웠던 건,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프로게스테론의 급격한 증가는 나의 피부와 두피를 유분감으로 덮어버렸다. 원래도 지성피부, 두피를 가져서 매일 씻지 않으면 기름이 덕지 덕지 올라오는 타입이지만, 임신 후 입덧이 시작됨과 동시에 유분감이 두 배로 넘쳐났다. 씻어야 한다는 이성은 명확했지만, 몸을 짓누르는 무기력과 졸음 앞에서 '샤워'는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과업(Task)이 되었다.


너무 무기력하고, 피곤해서 단 하루라도 샤워를 거르면 다음 날 견딜 수 없는 찝찝함이 몰려왔다. 볼과 턱 주변에는 좁쌀 여드름이 가득 찼고, 거울 속에는 낯선 이가 서 있었다. 유두의 색은 짙어지고, 배가 나오기도 전부터 가슴은 통증과 함께 커져만 갔다. 내가 40 평생 알고 지냈던 ‘나의 몸’은 매일, 일분일초 단위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 붕괴의 과정을 그저 수동적으로 관찰해야만 하는 무기력한 목격자였다.



거울을 보는 것이 끔찍해진 이유


임신 초기, 즉 입덧이 시작한 6주부터 입덧이 여전히 진행중인 10주까지 느꼈던 내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컨디션 난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어떠한 힘으로도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정체성의 상실'에 가까웠다.


많은 임산부들이 이 모든 변화를 '입덧'이라는 단어 하나에 둥글려서 표현하는 것 같다. 나는 신체적 구토와 정신적 혐오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 통제력 상실에서 오는 혐오감이 입덧보다 훨씬 더 참기 어려운 증상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 비로소 회복되는 것들


다행히 영원할 것 같던 터널에도 끝은 있었다. 11주 차 즈음부터 참을 수 없던 찝찝함과 자기 혐오감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4주 차인 지금,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혐오감은 마법처럼 사라졌다. 오히려 12주 부터 배가 나오는게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음에도, 내가 느꼈던 자기 혐오감과 내몸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찝찝함과, 거울도 쳐다보기 싫은 불쾌감은 사라졌다. 오히려 입덧으로 인해서 살이 빠져서 얼굴은 쾡해지다 못해 눈지방까지 빠지고, 배만 뽈록 하게 나온 모습이 E.T같아 보이기도 해서 흡사 다른 사람 처럼 보여, 거울을 보다 어색함에 순간 순간 놀라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자기 혐오감은 6주에 시작되어 10주 말에 끝났고, 입덧은 6주에 시작되어 13주 말에 멎었다. 정신적인 폭풍이 육체적인 고통보다 조금 더 빨리 지나간 셈이다. 입덧은 점점 나아졌다 싶다가도 어느덧 다시 곁에 와 있곤 했지만, 13주의 후반기에 어느 순간 식욕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긴 싸움에서의 졸업을 체감했다.


임신 초기는 단순히 아이를 품는 기간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송두리째 재구성되는 격렬한 과도기였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혐오와 불쾌감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40년동안 내가 알고 지낸 친숙한 내 몸을 지키고 싶었던 본능적인 저항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낯선 거울 속의 나와 조금씩 화해하고 있다.

임신 초기에 겪은 입덧과 자기 혐오, 그 치열했던 한 달간의 기록을 뒤로하며.


나는 첫 임신을 40에 한 터라, 주변에 친구들, 가족들, 지인들이 임신 선배가 수두룩 하지만, 내가 임신 초기에 느낀 '혐오감, 불쾌감, 주체할 수 없는 찝찝함'을 단 한명과도 공유하지 못했다. 다들 입덧만 얘기할 뿐, 내가 말하는 정신적 내용을 (의학적 용어도 없는 이 애매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았던 증상)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으신 분이 있으면, 말씀드리고 싶다.

그 증상, 졸업할 날이 곧 온다.

입덧은 입덧약이라도 먹을 수 있지, 이건 약도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견뎌야 한다.


내가 가졌던 내 몸에 대한 혐오 증상:

1. 주체할 수 없는 내 몸에 대한 찝찝함. (겨울임에도 내 몸에 피지분비량이 폭발적으로 많아지는걸 경험하면서 증상이 더 심해짐)

2. 견딜 수 없는 추위에 대한 취약함. (임신초기가 겨울이였기에, 추운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입덧보다 더 싫은게 추위였고, 샤워하기 위해서 옷을 벗는 그 잠깐의 추위조차 너무나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임신초기에 임산부는 목욕탕에 가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을 무시하고, 목욕탕을 갔다. 목욕탕은 일단 탈의실 부터 따뜻함이 있기에 옷을 벗고, 목욕하고, 몸을 말리는 그 모든 과정이 덜 괴워웠다. 물론, 샤워만 했다. 사우나 x, 탕 x)

누군가 조금이라도 차가운 손으로 내 몸을 만지는것을 극도로 불쾌하게 느낌.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어함. 심지어 남편이라도 거부감이 듬.

3. 스스로 내 몸을 만지기 싫어함. 동시에 엄청나게 자주 씻고 싶다는 생각이 함께 들기 때문에, 괴로웠음.

4. 거울을 보기 싫음. 하루종일 무기력하고, 하루에 샤워 한번으로 버티면서 아침에는 세수조차 못하는 날들이 늘어가지만 얼굴에 피지분비량의 증가로 아주 미세한 좁살 여드름같은것들이 볼과, 턱 주변에 엄청나게 생김.씻을 때 손으로 만지기도 싫고, 거울로 쳐다보는건 더욱 싫어서, 거울을 아예 보지 않음.

5. 정신적 이질감. 보통 목욕탕을 갔다 오면 엄청 게운함을 느꼈지만, 이 기간 동안은, 목욕탕을 갔다와도 여전히 찝찝함이 남아있음. 씻지 않아서 생긱는 찝찝함과는 결이 다름. 내 몸을 스스로 거부하고, 내 몸이 아닌 다른 몸안에 들어가 있는 거부감인것 같기도 하고... 내 몸에 대한 엄청난 정신적 이질감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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